정경심 "동양대 표창창 큰 의미있는 문서 아냐"
"딸 보조인력 채용, 제가 요청해서 이뤄진 것"
"바쁘게 살았지만 타성 젖은 모습 부끄러워"
검찰, 징역 7년 벌금 9억 원 구형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항소심에서도 징역 7년의 중형을 구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엄상필·심담·이승련)는 12일 정 교수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정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저는 물론 가족 전체가 지옥 같은 세월을 살아온 2년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저려온다"고 운을 뗀 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은 단기 차익이 아니라 장기 보유 목적으로 샀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공익인권법 센터 동영상에 등장한 여성은 제 딸이 맞다"라면서 "제 딸은 제게 '내가 나라고 하는데 안 믿어주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증명하겠는가'라고 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와 관련해서는 "2011년 겨울방학에 학교를 홍보하고 지역 학생을 위해 수준 높은 영어강좌를 개설하려고 계획하면서 보조 인력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딸이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국한다고 해서 제가 부탁을 하여 도움을 받은 것이다"라면서 "딸은 보조 인력으로 안성맞춤이었으며 IBT 토플과 SAT 에세이 주제를 선별해주었고 샘플 에세이를 구해주었으며 영문기사를 스크랩해주는 등의 보조를 했다"고 강조했다.

표창장 발급 과정에 대해서는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여러 교수님이 증언하셨듯이 제 딸이 도와준 것을 알게 된 동료 교수들의 권유에 따라 표창장이 발급된 것이다"라며 "이 표창장은 사실 그리 큰 의미가 있는 문서가 아니었다. 지방대의 경우 그나마 지역민에게 큰 유인력이 있는 것은 총장 명의의 증서다. 그래서 당시 외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저희가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일괄 총장 명의의 수료증과 상장을 발급하던 현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딸이 엄마를 이용한 게 아니라 제가 딸을 이용한 건데 지금 와서 이런 시련과 고통을 안기다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골백번 후회를 하고 있다"면서 "동양대 부임 전에 저는 2007년 8월부터 2011년 8월까지 4년 동안 서울 소재의 대학에서 대학 영어 및 토익 토플 프로그램 총 책임자로 근무했다. 딸이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기간과 정확히 겹치지만 저는 한 번도 저의 직책이나 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아이의 스펙을 만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19년 8월, 배우자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된 후 제 삶은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상황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쳤다"면서 "저와 제 배우자는 검찰과 언론에 의하여 순식간에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이유를 헤아려볼 시간도 없이 언론의 집요하고 공격적인 취재와 자택 압수수색과 전 가족이 소환되는 강도 높은 수사, 구속과 석방, 재구속으로 연결되는 두렵고 충격적인 상황이 숨 쉴 틈조차 없이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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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저는 구속되어 적대적인 여론, 유리한 증거 확보의 어려움, 핵심 증인 회피 등 악조건 속에서 1심 재판을 받아야 했고 결과는 참담했다"면서 "성탄절을 앞둔 2020년 12월 23일, 저는 법정 구속돼 구치소의 독방에 다시 갇혔고, 저와 제 가족에 대하여 엄청난 비난과 조롱이 다시 쏟아졌다"고 했다.

이어 "절망의 늪은 어둡고 깊었지만 어미로서 책임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2심 재판 희망을 끌어모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제 꺾인 의지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다"면서 "제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구치소 독방에 앉아있는 낯선 저 자신 발견하는 중에도 성찰의 시간은 찾아왔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오느라 놓쳤던 시간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며, 취업하고 경제생활을 하는 등, 세속의 일에 치어 대학 시절의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서 안일한 생각도 했음을 깨달았다"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꿈꾸며 ‘불로소득’을 바라기도 했다. 지나온 인생의 길인만큼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원칙도 있었고 노력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바쁘게 살았지만 세월의 타성에 젖은 모습 또한 있었고 부끄러웠다"면서 "이 시련이 끝나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정 교수는 최후 진술에서 조 전 장관이 늘 호칭했듯 딸 조 씨를 시종일관 딸아이로 표현했다.

이날 검찰은 "정 교수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거짓의 시간, 불공정의 시간을 보내고 진실의 시간, 공정의 시간을 회복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징역 7년에 벌금 9억 원을 구형했다. 또 추징금 1억6400여만 원 명령을 요청했다.

정 교수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1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와 한 때 같은 대학에 몸담았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정 교수의 최후진술과 관련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양형에 유리할 텐데 2심에서까지 이러면 (어떡하나)"라며 "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나"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반면 조 전 장관은 SNS에 "제가 배우고 익혔고 가르쳤고 믿고 있는 법원칙"이라며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2011년 대법원 판결 일부를 공유했다.
다음은 정경심 교수 항소심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 판사님.

먼저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시면서 피고인의 의견을 경청하여 주셔서 깊히 감사드립니다. 최후 진술을 하는 이 순간 무척 떨리고 힘이 듭니다. 저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가 지옥 같은 세월을 살아온 2년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저려옵니다. 공소 사실과 1심 판결에 대해서는 변호인단이 상세한 소명을 하여 왔습니다. 저 또한 이에 대하여 몇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미공개정보 이용관련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공개정보 이용의 목적은 어떤 확실한 정보를 공개 직전에 제공받아 주식을 매수한 후에 정보가 공개되어 주가가 상승하면 단기차익을 챙기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제 동생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제 동생이 2018년 1월초 장내 매수를 했을 당시, 조범동은 매수 자체가 이해충돌이니 매도를 해야 한다며 대신 차명으로 장외 실물 주권 매수를 권유하였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 매수한 실물 주권을 2018년 1월 이후 한번도 청산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습니다 . 단기 차익이 아니라 장기 보유 목적으로 샀기 때문입니다.

공익인권법 센터 동영상 관련하여서도 한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동영상의 여학생을 보자마자 제 딸임을 확신했습니다. 어찌 엄마가 딸 얼굴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딸 얼굴의 일부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제 딸은 심지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나라고 하는데 안 믿어주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당시 유행하던 샤기컷이라는 스타일의 헤어, 착용한 안경테의 모양, 왼손잡이 필기법 등, 분명한 제 딸입니다.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2011년 겨울방학에 학교를 홍보하고 지역학생을 위해 수준높은 영어강좌를 개설하려고 계획하면서 보조인력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마침 딸아이가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국한다고 해서 제가 부탁을 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영주의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과 학부형들께 서울 명문 외고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 오겠다고 홍보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제 딸 아이는 보조 인력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IBT 토플과 SAT 에세이 주제를 선별해주었고 샘플 에세이를 구해주었으며 영문기사를 스크랩해주는 등의 보조를 하였고 학생들이 써낸 에세이를 첨삭하고 코멘트를 하는 일도 도왔습니다.

1심 법정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여러 교수님들이 증언하셨듯이 제 딸아이가 도와준 것을 알게된 동료 교수들의 권유에 따라 표창장이 발급된 것입니다.

이 표창장은 사실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지방대의 경우 그나마 지역민에게 큰 유입력이 있는 것은 총장 명의의 증서입니다. 그래서 당시 외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저희가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일괄 총장 명의의 수료증과 상장을 발급하던 현실이었습니다 .

2013년 초 영어영재교육 센터장까지 맡으면서 시급히 교재진행을 해야했을 때도 저는 딸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본인의 바쁜 시간을 쪼개서 문법연습용 문제를 만들어 주고 독해지문의 스펠링과 난이도를 체크하는 등, 보조 작업에 참여해주었습니다.

딸이 엄마를 이용한 게 아니라 제가 딸을 이용한 건데 지금 와서 이런 시련과 고통을 안기다니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골백번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꼭 잘 보아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2018년 영주시 및 도교육청의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딸아이의 도움을 받은 시기는 정확히 2014년 2월까지입니다. 영어보조인력의 부재때문에 저의 아이들을 동원해야했던 저는, 동양대에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영어사관학교를 제안하였고 2012년 9월에 개소시켰습니다. 소수정예의 학생들을 4학기동안 기숙형 프로그램으로 집중 훈련시켜서 2014년 제1기 수료생을 배출했으며, 이후에 모든 영어프로그램에는 제 제자들을 투입했습니다.

동양대 부임 전에 저는 2007년 8월부터 2011년 8월까지 4년 동안 서울 소재의 대학에서 대학 영어 및 토익 토플 프로그램 총 책임자로 근무했습니다. 저의 딸 아이가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기간과 정확히 겹치지만 저는 한번도 저의 직책이나 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아이의 스펙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부탁으로 지인을 통해 체험활동 기회를 마련해준 적은 있지만 그 체험활동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당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 판사님.

기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변호인의 의견서를 꼼꼼히 살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짧게나마 이 사건에 대한 저의 소회를 털어놓고자 합니다.

2019년 8월, 배우자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발표된 후 제 삶은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상황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저와 제 배우자는 검찰과 언론에 의하여 순식간에 범죄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이유를 헤아려볼 시간도 없이 언론의 집요하고 공격적인 취재와 자택 압수수색과 전 가족이 소환되는 강도높은 수사, 구속과 석방, 재구속으로 연결되는 두렵고 충격적인 상황이 숨 쉴 틈조차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과정에서 방어하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방어하려는 것도 범죄로 구성되었습니다.

1심 재판 내내 검찰과 언론은 저를, 강남 건물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을 지배하는 여회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배우자까지 끌어들여 권력형 비리로 둔갑시키고자 했고 국정농단보다 더 사악한 범죄라고 매도했습니다.

순식간에 체중이 15㎏이나 빠졌고, 수사단계에서 서너번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끌어올려야 변호가 될 텐데 뇌가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검찰은 PC 압수수색을 통하여 가족간의 사소한 통화를 포함한 수많은 정보를 확보하였지만 제 손에는 항변과 소명을 위한 자료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이미 방향을 정해 놓았고 제 답변은 꼬투리를 잡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혼돈 속에서 매우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수사단계에서 왜 이런저런 답변을 하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셨는데 지금 돌아보아도 제가 뭐라고 답변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질문에 대해 소극적으로만 임했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극도로 위축되고 혼란스러웠던 저의 상황을 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구속되어 적대적인 여론, 유리한 증거 확보의 어려움, 핵심 증인 회피 등 악조건 속에서 1심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성탄절을 앞둔 2020년 12월 23일, 저는 법정 구속되어 구치소의 독방에 다시 갇혔고, 저와 제 가족에 대하여 엄청난 비난과 조롱이 다시 쏟아졌습니다.

절망의 늪은 어둡고 깊었지만 어미로서의 책임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2심 재판 희망을 끌어모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제 꺾인 의지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구치소 독방에 앉아있는 낯선 제 자신 발견하는 중에도 성찰의 시간은 찾아왔습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오느라 놓쳤던 시간입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며, 취업을 하고 경제 생활을 하는 등, 세속의 일에 치어 대학시절의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갔고 안일한 생각도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꿈꾸며 ‘불로소득’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지나온 인생의 길인만큼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칙도 있었고 노력도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고, 사치품을 구매하지도 않았으며 가사도우미의 도움조차 받지 않으며 동분서주했습니다. 내세울 선행을 베풀진 못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타성에 젖은 모습 또한 있었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시련이 끝나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분 부장판사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이만 마치고자합니다. 모쪼록 이 재판을 통해 저의 억울함이 밝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최후 진술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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