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국가면제란 ‘한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이번 판결은 지난 1월 있었던 다른 재판에서 법원이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피해자 한 사람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이용수 할머니,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여 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1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란 소송이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재판부가 별도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뜻한다.

법원은 일본을 우리나라 법정에 세우는 것 자체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면 선고와 강제집행 과정에서 외교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합의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에 대해서도 “외교적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피해 할머니 측은 “너무 황당하다”며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부가 선고를 다 마치기 전에 법정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한국에 강력히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송영찬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