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효과적인 디지털 전환과 생산적인 협력모델 구축이 보험산업의 핵심 도전과제라고 밝혔다.보험연구원은 21일 비대면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2021년 보험연구원 운영 방향을 밝혔다. 안 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재확산 반복으로 비대면 경제활동이 일상화되면서 설계사와 같은 대면채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보험회사가 소비자 접점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안 원장은 "데이터와 플랫폼 기반의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전개되는 환경에서 비용절감 위주 디지털화와 대면채널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보험산업은 데이터 확보에서부터 경쟁열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성장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산업이 디지털 비대면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상품, 채널, 자본 등에서 상당한 구조개혁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안 원장은 올해 연구방향으로 '협력적 경쟁'과 '경영혁신'을 제시했다.저성장, 비대면 환경에서는 산업 내·외의 기업, 정부 등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을 확대한 후 그 시장에서 공정경쟁을 통해 소비자 후생을 높여 생산적인 보험생태계를 조성하는 협력적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이를 뒷받침하려면 수익성을 억압하고 있는 사업모형의 재조정, 적절한 위험관리와 경영투명성 제고, 빅데이터 활용 등 위험선별능력 강화를 통해 경영혁신과 보험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올해에도 연구가 보험현장과 괴리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시장 현안 대응 속도를 높여 보험산업 내 주요 의사결정자와의 피드백 채널을 활성화함으로써 연구원의 현안 분석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안 원장은 "비대면 환경에서 온·오프라인 세미나 병행, 일반인 대상 동영상 컨텐츠 제작, 언론 기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 성과를 알리고 우리 사회 여러 계층의 피드백을 반영함으로써 현안 분석과 대안 제시에 치우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보험회사는 총 5조574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5조2552억원)보다 6.1%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워진 경영환경을 고려하면 ‘예상 밖의 선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실적을 놓고 “양적으론 성장했지만 질적으론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 영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자산을 내다팔아 번 돈이 많다는 이유에서다.27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순이익에서 채권 처분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의 경우 생명보험은 62%, 손해보험은 87%까지 상승했다. 만약 채권 처분이익이 없었다면 생보업계의 순이익은 3조1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손보업계는 2조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급감했을 것으로 분석됐다.보험사 순이익은 크게 ‘보험손익’과 ‘투자손익’이 좌우한다. 일반적으로 본업인 보험사업에선 적자를 보지만,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채권 등에 투자해 번 돈으로 순이익을 내는 구조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보험사들은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적극적으로 처분했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가격은 비싸지기 때문이다.물론 보험사가 채권을 매각하는 것을 모두 ‘꼼수’로 볼 수는 없다. 듀레이션(채권 실효만기) 관리 차원의 채권 교체 매매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비싼 채권을 많이 팔면 처분이익이 발생하고 투자이익으로 잡힌다.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는 채권 매각이 일정 부분 필요하긴 하지만, 과도한 매각은 미래의 이익을 앞당겨 실현하는 것과 같다”며 “국내 보험산업의 이익 구조가 건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제로금리 시대에 대비해 보험사의 사업 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 생보업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0년 11.3%에서 올해 4.6%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손보업계 ROE도 14.3%에서 7.5%로 하락했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보험업계는 왜 단기 성과주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까.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해외에 비해 너무 짧고, 금융당국도 순환인사를 이유로 보험 담당자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다. 이런 ‘단명 풍토’가 보험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27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3~2018년 국내 보험사 CEO의 재임 기간은 평균 35개월로 분석됐다. 생명보험사는 37개월, 손해보험사는 30개월이었다. 올해 국내 보험업계에선 10년 안팎 재임한 장수 CEO가 대거 퇴진했다. 차남규 전 한화생명 부회장, 이철영 전 현대해상 부회장 등이 물러났고, 홍봉성 라이나생명 사장은 연말까지만 일한다. 대다수 전문경영인의 임기는 길어야 3~4년 정도다.금융지주 또는 대기업 계열에서는 보험사 대표 자리가 ‘커리어를 쌓거나,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바짝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게 하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에는 5~10년 이상 재임하는 CEO가 많다”며 “나중에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품 설계와 서비스 품질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경영진의 보수체계도 장기적 안목으로 경영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 임원 보수에서 기본급 비중은 68%에 달한다. 반면 미국 보험사는 73%가 장기 분할지급되는 성과급이다. 한상용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보험사 CEO의 장기 재임 기회를 늘리고, 보상체계에서 성과보수 비중도 높여야 한다”며 “성과가 나쁘면 이연 지급분을 축소 또는 환수하는 조항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일선 영업현장의 보험설계사도 절반가량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설계사로 등록해 1년 뒤에도 계속 남아 있는 비율(13회차 등록정착률)은 생명보험사가 평균 41.2%, 손해보험사는 56.6%에 그치고 있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