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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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상 여러 '병원'의 개념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건물 임대인이 의료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지만 지자체의 건축규정에 따라 해당 건물에 '병원급 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면, 계약 해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법원은 임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한의사 A씨가 건물주 B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7~8월경 한 소도시의 건물 임대 광고를 보고 한방병원을 차릴 목적으로 임대인 B씨와 만났다. 해당 건물 2~4층 총면적 1224㎡에 한방병원을 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임대차 조건을 협의했다. 계약전 B씨는 A씨에게 미리 건물도면 등을 보내줬다.

계약체결 과정에서 A씨는 '병원 개설 허가에 대한 건물(정화조와 소방시설) 부분'을 임대인에게 책임지고 설치 및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B씨도 이를 수용했다. 바닥과 천장도 임대인이 철거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같은 해 9월 초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난 뒤 발생했다. 해당 건물은 설계상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은 가능하지만 '병원급' 의료시설은 1000㎡ 미만에 대해서만 열 수 있다는 점을 A씨가 뒤늦게 안 것이다. 해당 지자체의 건축조례에 따르면 1000㎡ 이상 병원은 인접대지 경계에서 2m 이상 띄어야 하고, 건축선으로부터 3m 이상 띄어야 한다. 해당 건물은 처음부터 요건에 맞지 않았다.
A씨는 "애초에 이 임대차 계약은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은 원시적으로 불능"이라며 계약 무효 및 보증금 반환을 주장했다. B씨는 "병원 개설이 아예 불가능하지 않고 이미 외벽 바닥 등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비용을 보전하라"고 요구했다.

1심은 A씨와 B씨 모두 병원의 건축기준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관련 책임을 B씨에게 부담하도록 한다는 약정도 없었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피고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구분 의미와 허가 절차 차이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계약이 무효가 아니라고 봤다.

반면 2심은 처음부터 이 임대차계약은 목적(한방병원 개설)을 이룰 수 없는 계약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신 병원 허가 조건 등은 개설허가를 신청할 의료인인 A씨가 알아봐야 할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B씨는 1억5300만원의 보증금 및 월차임을 A씨에게 돌려주되, A씨가 바닥 철거 및 외벽 수리 등에 들어간 비용 중 70%(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항소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은 △A씨가 구체적으로 이 사건 임대차 목적물 전부에 대해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는 구분되는 병원급 의료기관으로만 개설 허가받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고지하지 않은 점 △실제로 병원 개설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은 점 △A가 계약 체결 전 미리 건축도면, 실측도 등을 받아보고 상당한 검토 시간이 있었던 점 등을 지적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