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불가항력' 정의 명확히 해야 낭패 안봐"
“상거래 계약에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으로 책임을 다할 수 없을 때 보상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넣어두는데 모호한 문구를 사용한 탓에 대형 분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불가항력의 정의가 무엇이고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명확히 해 둬야 합니다.”

미국 대형 로펌 아놀드앤드포터의 제임스 리 서울사무소 대표파트너(미국변호사·사진)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많이 기업이 불가항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다가 낭패를 겪곤 한다”며 “맞춤형 양복을 산다는 느낌으로 사업 내용에 적합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 변호사는 “예를 들어 불가항력의 조건을 막연히 천재지변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심각한 재해를 천재지변으로 봐야 하는지 사전에 합의해두고, ‘정부의 조치로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처럼 추상적인 표현이 있지 않은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법원에서는 불가항력 조항이 과도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계약 의무를 강제하면서 손해배상까지 하도록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100여 년 역사의 아놀드앤드포터는 미국 워싱턴DC(본사)와 유럽, 아시아 등에서 1000여 명의 변호사를 두고 있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5조2000억원짜리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는 한국 정부 변론을 하고 있다.

리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힘들어했던 상황을 떠올린 듯 한국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제품을 팔면서 계약서에 넣었으면 하는 불가항력 조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 소재나 부품을 공급하는 외국 업체의 소속 국가가 해당 공급사로 하여금 한국 회사에 대한 제품 생산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경우를 불가항력 조항에 담는 게 어떨까 한다”며 “다른 나라에 대체 공급처가 있다고 했을 때도 현재 벤더와 동일한 수준의 품질을 갖췄을 때로 한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리 변호사는 “외국의 특정 회사와 여러 개의 계약서를 쓰는 일이 많은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재판으로 해결할지, 중재로 해결할지, 어느 나라 법에 따라 소송을 진행할지 등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며 “계약서를 점검해 분쟁 해법을 일원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