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경덕 교수 광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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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욱일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문제 삼을 나라가 한국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은 2020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 위원회가 욱일기를 “반입 금지품으로 하는 것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라는 방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또한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국민의 욱일기 응원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입으로 쏠렸다. 국내 언론이 도쿄 올림픽 기간 동안 욱일기 허용 방침을 문의하자 IOC는 “모든 올림픽 경기장은 정치적 시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 욱일기란 무엇인가

1870년 일본은 붉은 원 주위에 16줄의 욱광(旭光, 햇살)을 그린 깃발을 일본 제국 육군기로 채택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이를 1889년에 군함기로 사용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욱일기의 원형이다.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이 추축국의 일원으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이웃나라에 대한 침략을 감행했을 때 욱일기는 일본 전투기와 전함에 사용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며 일본군이 해체됐다. 자연히 욱일기도 군기(軍旗)로서 지위를 잃었다. 그러다 육상·해상 자위대가 1954년 다시 한 번 욱일기를 상징기로 채택했다. 이후 국제적 스포츠 행사나 브랜드에서도 욱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욱일기, 나만 불편해?

20세기 독일 나치즘의 표지였던 하켄크로이츠(갈고리십자가)는 지금까지도 러시아,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이 법적으로 제한된다.

이와 달리 욱일기 사용을 문제감는 국가는 별로 없다. 실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의 욱일기 사용에 대해 IOC에 항의한 나라는 지금까진 한국뿐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이 유달리 욱일기 사용에 민감하다는 해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CNN이 지난 7일 보도한 ‘왜 한국은 일본이 도쿄 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길 원하는가’에서 욱일기가 왜 ‘한국인’들에게만 모욕적인지를 분석했다.

욱일기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많은 아시아국가들에게 태평양전쟁의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욱일기에 대한 국내 여론은 좋지 않다. 최근 네덜란드 축구팀 PSV 에인트호번은 욱일기 문양을 사용해 일본 선수 영입 소식을 전했다가 한국어로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내한을 앞두거나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해외 연예인들이 욱일기를 착용하거나 소품으로 활용하는 사건은 계속 있었다.

지난달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아들 션 오노 레논이 그의 여자친구가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것을 비호하다 한국 네티즌들과 SNS 상으로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연예인들도 욱일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소녀시대 출신 티파니, 빅뱅의 탑 등이 욱일기 이모티콘을 사용하거나 욱일기가 새겨진 의상을 착용해 한국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 포스트가 지난 5월 22일 ‘중국이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의 입항을 허락한 것은 근접 시대의 징조’라는 기사에서 설명한 것처럼 붉은 태양에 흰 선들의 배경은 많은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일본의 만행에 대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외국인들이 욱일기 사용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로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를 지적했다.

서 교수는 한경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독일은 전쟁 이후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을 국내법으로 막는 등 사후 처리를 확실히 했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도 동조하게 됐고, 나치기(하켄크로이츠)의 사용에 관해 (유럽 여러 나라가) 강력히 반발했기에 세계인들이 인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전후 처리를 똑바로 진행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욱일기를 사용하지 않다가 다시 슬며시 해상자위대 깃발로 사용하면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일본의 태도를 비판했다.
지난 광복절에  전국 노동자 대회 참가자 등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광복절에 전국 노동자 대회 참가자 등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욱일기가 세계인의 문제가 되게 하려면

욱일기를 둘러싼 논란을 국제적인 문제로 만들기 위해 서 교수는 “국회에서 금지 법안을 만들어 2차 세계대전으로 함께 아픔을 겪었던 주변 나라들과 동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한국 내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욱일기 사용을 제재하도록 하는 욱일기 금지법(형법, 영해 및 접속수역법, 항공 안전법 개정안)은 2018년 10월 이석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대표발의했으나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지난 2월에도 (해당법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돌리고 현재에도 각 부처에 협력을 요청하며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국회가 정상화되면 다시 법안 통과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1일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 앞으로 장관 명의 서한을 보내 욱일기에 관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입장에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명했다.

문체부는 "욱일기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사용 금지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국회나 정부 차원의 노력 이전에 욱일기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려는 민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22일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미국 유명 쇼핑몰 월마트에서 욱일기를 판매했던 ‘온라인 스토리’와 호주 쇼핑몰 레드 버블에서 욱일기 디자인 상품을 판매했던 ‘임팩트’로부터 욱일기 관련 상품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답을 얻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해당 업체로부터 '우리는 그 상품을 내리는 데 문제가 없다. 욱일기가 단지 역사적인 깃발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반크 회원인 대학생이 직접 이들 회사에 요청해 이뤄진 결과였다.

서 교수 역시 “과거 욱일기 디자인을 상품화했던 기업들을 SNS에 공개한 적 있었다. 아사히 맥주, 유니클로, 일본 항공 등의 욱일기 사용을 지적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라며 민간의 노력도 필요함을 강조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끝없는 영유권주장 도발

욱일기 도발 외에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

우리나라가 이에 항의했지만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일본 측은 남북 단일팀의 한반도기에 독도가 표기됐다는 이유로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IOC는 독도가 표기된 한반도기를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고 독도 없는 한반도기를 들 것을 권고했다.

당시 권고를 받아들여 한반도기에는 독도를 뺀 우리나라는 도쿄 올림픽의 독도 표기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 2020 도쿄 올림픽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

서 교수는 도쿄 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 게재등 도발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욱일기의 문제점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지는 시기에 욱일기를 둘러싼 논란이 커진다면 오히려 욱일기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욱일기 논란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중국 SNS 웨이보 등으로 넘어갔다.

중국 네티즌들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의 욱일기 사용을 지적하는 한국 기사들을 번역해 올리면서 중국도 욱일기 사용 반대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릴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나온다. 일본 학자들조차도 도쿄 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이 허가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케도 다카히로 도쿄대 교수는 "욱일기가 단순히 아침 해를 표현한 깃발로 널리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속임수"라며 혐오 시위나 우익 선전차에 욱일기가 등장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올림픽 경기장에 욱일기가 대거 내걸린다면 "세계로부터 '전전회귀(戰前回歸)'라고 비난받고 일본인으로서도 오싹한 광경이 될 것"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올림픽 헌장 50조 2항은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이나 그 외 장소에서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인 선전도 금지한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IOC는 우리 정부에 남북 단일팀이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한반도기를 들고나갈 것을 권고했고 이는 그대로 지켜졌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한다"라는 올림픽 정신의 취지에 맞춰 치러질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김민지 한경닷컴 인턴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