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 제도(이공계 병역특례)를 축소·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학교수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폐지되면 우수한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없는 데다 해외에서의 우수 인력 공급도 끊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또 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가 국방력에도 득보단 실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호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병역 혜택이 사라지면 국내 인재의 해외 유출은 물론이고, 혜택 덕분에 그나마 가능했던 해외 우수 인재 유치도 완전히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산하 연구소인 기초과학연구원엔 매년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등에서 박사 학위를 딴 한국 국적 연구원 2명 안팎이 입학한다. 연구소에서 36개월 동안 일하면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이 교수는 “병역 혜택이 없다면 우수한 연구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굳이 한국에 올 이유가 없어진다”며 “결국 국내 과학 기술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5일 전국 30개 대학 자연과학대학장과 함께 협의회장 명의로 정부에 전문연구요원 제도 확대를 공식 요구했다.
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개 과학기술원 교수협의회 및 교수평의회도 지난달 제도 축소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다른 나라 기술을 뒤쫓아 베끼면서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은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야 성장할 수 있다”며 “병역특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20년 전 KAIST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고 지금은 연구실에서 전문연구요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또 “많은 제자가 병역 혜택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방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국방력 증진에 크게 기여해왔다”며 “국방도 과학기술력으로 경쟁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전문연구요원을 줄이는 것은 국방력에 마이너스”라고 했다. 이공계열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 논란을 잠재우면서도 국방력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선 전문연구요원의 연구를 국방력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을 축소·폐지하는 내용의 병역대체복무제도 개편안을 놓고 중소기업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병역자원이 급감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지만 내년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앞두고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소재·부품 연구를 병역특례 요원에게 의존하는 기업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될 처지다. 8일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마치고 이르면 이달 말 병역대체복무제도 개편 최종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까지 전문연구요원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고, 산업기능요원은 폐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해 기준 병역대체 복무요원은 3만6770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달 발표를 예정하고 있으나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현상 유지 목소리도 많아 발표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라면서도 “늦어도 연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한 베어링업체를 방문해 “병역특례를 가급적 중소기업에 많이 배정되도록 하라”고 지시한 만큼 최종안이 다소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사태가 터졌다고 해서 몇 년 유지해주는 식으로는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한다”며 “적정 군병력 규모 분석 등을 통해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부품 국산화하라면서 병역특례 없애…中企 "R&D 포기할 판"병역대체 복무제도를 축소하는 내용의 국방부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업 현장은 초비상이 걸렸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도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된 반도체 전략물질 연구를 병역대체 자원인 전문연구요원에 의지하고 있는 중견기업들은 연구개발(R&D) 시스템 기반이 흔들리게 될 처지다. 업계에서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발발했는데 원군은커녕 아군 병사를 빼내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中企 기술경쟁력 핵심 ‘전문연구요원’군대에 가는 대신 산업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일하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병역대체 복무제도는 크게 두 가지다. 기업의 제조·생산인력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기능요원(학사학위 이하)’과 대학연구소 및 기업의 R&D를 지원하는 ‘전문연구요원(석사학위 이상) 제도’로 나뉜다. 산업기능요원은 현역 또는 보충역 판정에 따라 26~34개월, 전문연구요원은 36개월 근무한다.이 중 전문연구요원은 중소·중견기업의 기술력 확보와 제고를 위한 대체복무제의 ‘꽃’으로 불린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172개 기업에서 7881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2008년 1445개에서 지난해 2172개로 증가했다. 10년 만에 727곳이 늘어났다. 중소기업이 75.1%를 차지한다.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이 전문연구요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국방부는 매년 2500명씩 선발해온 전문연구요원을 2024년까지 절반으로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500명 중 대학연구소에 배정되는 박사과정 전문인력은 현행 1000명의 70%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기업 몫을 대폭 줄인다는 방침이다. 대체복무 축소를 반대하는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 “정부가 기업을 너무 홀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전문연구요원 축소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대응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포토레지스트(반도체 감광액) 기술을 보유한 화학업체 D사는 전문연구요원 9명을 두고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불화수소(에칭가스) 관련 기업인 K사도 전문연구요원 17명을 핵심 연구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인력난 중기 버팀목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 축소가 중소기업의 미래 경쟁력에 관한 사안이라면 산업기능요원 폐지는 당장 생존의 문제라는 게 산업 현장의 호소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국방부는 전문연구요원은 현재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산업기능요원은 2022년 선발 인원을 50%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2024년 아예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매년 6000명을 배정해왔으나 올해 4000명으로 줄였다.지난해 기준 산업기능요원은 2만8789명으로 전국 8236개 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 근무 비율이 55.1%로 지방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도 인력난이 심각한 제조업 등 공업분야 복무 비중이 94.9%로 절대적이다. 산업기능요원 제도가 축소·폐지되면 그만큼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중소 제조업체는 취업난이 무색할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산업기능요원 제도가 폐지되면 생산성은 낮고 인건비는 더 드는 외국인 근로자를 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산업기능요원 제도 폐지는 가뜩이나 어려운 직업계고 학생의 취업난도 심화시킬 것이란 관측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직업계고 남학생의 86%가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 연구위원은 “병역자원 감소 문제를 산업 현장 인력을 빼서 해결하겠다는 것은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책”이라며 “연간 1만 명이 넘는 미소집 사회복무요원을 활용하거나 전문성이 높은 부사관 비율을 높이는 식의 다양한 정책 수단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백승현/임락근 기자 argos@hankyung.com
“생산직원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에 산업기능요원은 생산 라인의 핵심입니다. 산업기능요원이 줄어들면 어디 가서 인력을 구할지 한숨만 나옵니다.”경기 화성에 있는 한 기계제조 중소기업의 A인사부장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방부의 산업기능요원 축소 방침에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인력난에 처할 것”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이 중소기업은 전체 직원 54명 가운데 8명이 산업기능요원이다. 전체 인력의 약 15%를 차지하는 산업기능요원은 모두 생산라인에 배치돼 있다. A부장은 “현역 복무 대상자는 34개월을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3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산업기능요원은 핵심인력”이라며 “약 3년간 일하면서 직원들의 숙련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1석2조”라고 말했다.이 회사는 병역특례로 입사한 박사급 전문연구요원을 의무 근무기간이 끝난 뒤 정규직으로 뽑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총 7년을 일하면서 팀장으로 승진했고 회사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이 업체는 내년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대상이 된다. A부장은 “당장 내년부터 더 많은 인원을 뽑아야 하는데 산업기능요원마저 줄어들거나 폐지되면 생산 라인을 운영하기 어려워진다”며 “최저임금은 지난 2년 동안 급격하게 올랐고 사람은 더 뽑아야 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 때문에 인력을 원활하게 수급하기 위해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했다”고 말했다.서울 온수동에서 철강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산업기능요원이 없어지면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될 것”이라며 “외국 인력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국내 산업에 축적되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업기능요원을 확보하면 복무 기간이 끝나도 한국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과 자산이 국내 산업에 축적된다”고 덧붙였다. 김문식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장은 “양질의 대체복무요원은 중소기업에 천군만마”라며 “뿌리산업을 키우겠다는 정부가 고급 인력을 중소기업에서 줄이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안보를 위한 병력 유지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산업계의 어려움도 감안해서 이를 보완해나가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서울대 공대가 일본에 기술을 의존하고 있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자립을 돕기 위해 특별 전담팀을 새로 만들었다. 전폭적이고 체계적인 기업 지원을 위해 서울대 소속 320여 명의 교수와 6개 연구소가 참여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이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다. 연구개발(R&D)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학과의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중소·중견기업 기술 자립 돕는 역할서울대 공대는 6일 산학기술협력 조직인 SNU 공학컨설팅센터 산하에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 특별 전담팀(TF)’을 새로 구성했다고 밝혔다.TF는 중소·중견기업과 협업해 기술을 개발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울대 공대가 TF를 꾸린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기술력이 부족한 한국의 중소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기업엔 연구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서울대 320여 명의 교수와 소속 연구소를 활용해 일본의 경제보복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TF를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TF는 산업별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화학소재 등 6개 분야로 나눠 조직을 구성했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울대 공대 산하 6개 연구소가 서로 연관된 산업 분야를 맡는다. 반도체공동연구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를 담당한다. 자동차 분야는 차세대자동차연구센터가 맡고, 전기·전자 분야는 자동화시스템 공동연구소, 화학소재는 화학공정신기술연구소가 담당한다. 기계금속 분야는 신소재공동연구소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두 곳이 함께 참여한다. 분야별 협력이 필요하다면 TF를 중심으로 연구소 사이의 협력도 유기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TF는 특히 정부가 ‘조기에 공급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100대 품목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자립 위해선 대학이 ‘거간’ 역할도 해야”서울대 공대는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독일 등 다른 선진국과도 적극 협업할 계획이다. SNU 공학컨설팅센터는 2015년부터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국내 중소·중견기업에 독일의 기술을 지원해왔다. 차 학장은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 한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대학이 보유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 ‘거간’ 노릇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4년 전에 설립된 SNU 공학컨설팅센터는 1600건의 기술개발 및 컨설팅을 해오며 쌓은 노하우가 있다”며 “TF팀은 최근 개발이 시급한 소재와 부품, 장비에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서울대뿐 아니라 KAIST도 지난 5일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국내 기업의 기술개발을 돕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을 출범시켰다. KAIST의 자문단엔 전·현직 교수 100여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