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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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한번 다녀가면 각종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닥치는 대로 챙겨가 며칠간 업무가 마비될 정도예요.”

검찰에 압수수색당한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과 별건 수사 관행이 지나치다는 지적은 오래됐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명백히 법위반인데도 그랬다.

압수수색 범위와 대상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형사소송법 및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검찰 등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을 나가기 전 영장에 압수수색의 사유와 범죄 혐의는 물론이고 수색할 장소, 압수할 물건 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압수할 대상이 컴퓨터 저장장치 등 전기통신에 관한 것일 때는 특정 기간을 미리 정한 뒤 해당 부분만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다르다. ‘먼지 털기’식으로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검찰은 영장에 ‘사무실’ ‘자동차’ ‘사업명’ 등 압수 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기재한 뒤 현장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서류 전체를 뭉텅이로 들고 오곤 한다. 그렇게 수집된 증거를 들춰보다가 새로운 혐의를 발견하면 별건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게 일종의 전략이다. 법원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영장을 발부하고, 재판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들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줬기에 가능했던 관행이다.

법원은 최근에서야 검찰의 관행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직접 수차례 압수수색을 받고 나서야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지난 24일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강원랜드 사외이사 지명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부장판사 이순형)는 검찰이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에 대해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한 경우에는 유죄 인정의 증거가 될 수 없다”며 권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차문호)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방위사업체 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수사기관이 혐의와 무관한 것까지 전부 압수한 다음 장기간 보관하면서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는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2013년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신설하며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는 드러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6년이 지났지만 먼지 털기식 수사 관행은 여전하다. 이번 판결이 검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과 별건 수사 관행을 도려내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기대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