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조작 등에 쓰이던 매크로가 택시업계에도 들어왔다. 택시 호출앱(응용프로그램)에서 매크로 사용을 통한 영업이 기승을 부리자 업체들이 단속에 나서고 있다. 공연표 예매, 수강신청 등에서도 매크로가 쓰이면서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모호해 단속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크로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시장교란 '불법 매크로' 판쳐도 단속은 미미
택시부터 대학가까지 ‘매크로 천국’

택시기사 8년차인 이모씨(52)는 같은 시간을 일해도 다른 택시기사들보다 30% 정도 더 벌어들인다. 택시 호출앱에서 원하는 장거리 배차가 뜰 때마다 자동으로 클릭해주는 매크로 프로그램 덕분이다. 택시 호출앱용 매크로는 손으로 조작할 때보다 더 빠르게 호출앱을 조작할 수 있다. 매크로를 이용하면 ‘장거리 배차’가 뜰 때 택시기사는 해당 배차를 바로 수락할 수 있다. 다른 택시·대리기사 호출 서비스에서도 매크로를 암암리에 쓰는 택시기사들이 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공연업계에서도 매크로는 골칫거리다. 지난 15일 부산 아시아드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공연에서 해당 기획사는 공연 예매자와 관람자가 같은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업계 관계자는 “VIP석 등은 암표로 200만~300만원대에 팔리기도 해 암표상들이 매크로로 티켓을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도 학기마다 매크로로 몸살을 앓는다. 서울대 등 많은 학교에선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받는데 매크로를 이용해 신청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대 학생 신모씨(25)는 “인기 있는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선 다른 학생보다 빠른 클릭이 필요해 매크로는 필수”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지난 1월 매크로를 이용한 수강신청이 문제가 되자 새로운 수강신청 제도 도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질서 교란해도 법 제재 없어

매크로를 이용한 시장 질서 교란행위가 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관련 법조항도 없어 경찰은 매크로 관련 사고가 일어나면 그때마다 다른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매크로로 티켓을 대량 구매하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거나, 서버 장애를 일으키면 컴퓨터장애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식이다.

규정이 뚜렷하지 않으니 같은 현안을 놓고서도 판결이 제각각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 및 유통 혐의로 기소된 A씨(38)는 1심에서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포털사이트 운영에 매크로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결국 업체들은 스스로 매크로를 규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지난 연말부터 매크로 사용을 차단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매크로 제작자들도 새 매크로를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업무방해죄 적용이 가능하다지만 몇 장의 티켓을 구매해야 업무방해인지 규제 내용이 두루뭉술하다”고 답답해했다.

국회에는 매크로 관련 법안들이 계류 중이다. 전자상거래에서 매크로를 금지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재산상 이득을 위한 매크로 사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매크로 처벌 규정을 개별적으로 세세하게 만들면 이를 벗어나는 또 다른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할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매크로 사용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법 규정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크로 프로그램

한 번 입력으로 특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제작된 프로그램. 매크로를 사용하면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 수행할 수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