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정부가 ‘2030 국가 온실가스 로드맵 수정안’을 내놓자 산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해외에서 줄이기로 했던 온실가스 감축량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해결하기로 하면서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온실가스 감축량이 두 배로 늘었기 때문이다. 감축량 목표를 맞추려면 고효율 설비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기업은 공장 가동을 줄이든지,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해 채우든지 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들은 “보호 무역주의 강화, 유가 상승 등으로 가뜩이나 대내외 환경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산업계에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정책이 추가됐다”며 “경영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했다.
철강·油化 "경영환경 최악인데… 온실가스 추가 감축에 수조원 써야"
◆산업 부문 감축량 두 배로

애초 2015년 마련한 로드맵에서는 국제 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량 37% 중에서 25.7%(2억1800만t)는 국내에서, 나머지 11.3%(9600만t)는 해외에서 줄이기로 했다. 해외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들이거나 해외 협력을 통해 감축사업을 한다는 얘기였다. 산업계 부담을 덜어주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는 비용 분담 등 이행 방안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해외 감축분을 1.9%(1600만t)로 낮추고, 대신 국내 감축은 32.5%(2억7600만t)로 높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계 부담은 집중적으로 커졌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엔 배출전망치(BAU) 대비 11.7%만 줄이면 됐으나 이번 수정안에서는 20.5%를 줄여야 한다. 감축량으로는 기존 5700만t에서 4200만t 늘어난 9900만t에 이른다.

설비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공정 개선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고, 이를 못 하면 배출권 거래시장을 통해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비용 부담이 막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기존 목표량도 벅찬데…”

철강·석유화학업체들은 “이미 고효율 첨단설비를 갖춰 더 이상 온실가스 감축 여지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집진설비, 비산먼지 저감장치 등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어떻게 추가 감축하라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보호무역 강화, 극심한 원가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탄소 비용까지 급증해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발전업계는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민간 발전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탄소배출권을 추가로 구입하면 고스란히 원가에 반영될 것”이라며 “발전소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불만도 크다. 항공업은 수송업 가운데 배출권거래제에 적용되는 유일한 업종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최신 항공기로 전부 교체하는 것인데 대당 1000억~400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이행방안 구체성 부족”

환경 분야 전문가들은 “연도별, 업종별 배출량이 제시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이행방안도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정안에 따라 건물 부문 BAU 대비 감축률은 18.1%에서 32.7%로 늘어난다. 공공 부문 감축률은 17.3%에서 25.3%로, 수송 부문은 24.6%에서 29.3%로 높아진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저탄소 에너지 건물을 지어도 거주자의 소비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 에너지 감축분이 많지 않다”며 “전기차 확산을 통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계획도 연료 조달 측면에선 온실가스 감축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음달 3일과 11일 두 차례 공청회를 열어 수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심은지/박상익/박상용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