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져도 다양한 배경과 잠재력에 가점을 주는 ‘정성평가 방식’을 3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단독] 서울대 로스쿨 '정성평가' 부활
서울대 로스쿨 관계자는 8일 “내년도 입시 일반전형 1단계에서 자기소개서 등 정성평가를 부활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50%씩이던 리트(법학적성시험)와 학부 성적 반영률을 40%씩으로 내리는 대신 정성평가 점수를 20% 반영하는 방식이다.

서울대는 2016학년도까지 정성평가를 시행하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2017·2018학년도에는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서울대는 ‘20대 초반, 상경계 전공’ 일색인 신입생 구성에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정성평가 비율을 20%에서 점차 늘려간다는 구상이다. 서울대 로스쿨은 “학점과 리트 성적 등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경험과 전공, 사회적 배경 등 잠재력을 반영해 다양한 지원자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로스쿨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로스쿨계 전반의 정성평가 확대로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성평가는 2016년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일면서 대폭 축소돼왔다. 당시 교육부 조사에서 자기소개서에 부모 신상 등을 기재한 사례가 드러나면서 공정성 시비가 커지자 서울대 연세대 등 10개 로스쿨이 정성평가 비율을 줄이거나 폐지했다. 서울대는 원래 정성평가 비중이 40%에 달해 학점과 법학적성시험(리트) 성적이 조금 낮아도 자기소개서로 ‘뒤집기’가 가능했다.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인하대 로스쿨 등은 2018학년도 입시부터 정성평가를 재도입했다.

서울대가 공정성 논란에도 3년 만에 정성평가로 회귀한 것은 구성원의 획일화에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학점과 리트 성적으로 줄을 세우다 보니 면접 등으로 보완해도 합격자 대부분이 어린 고학점자로 채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2017학년도 합격자는 25세 이하가 67.6%에 달한 데 비해 32세 이상은 0.7%에 그쳤다. 3년 전 40명이던 의료·과학·교육·기업 등 사회경험자도 23명으로 반토막났다는 게 서울대의 설명이다.

법조계와 교육계에서도 획일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형 로펌에서 채용을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인턴으로 오는 학생들을 보면 로스쿨 1, 2기 때는 전공이 다양하고 개성 강한 학생도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만만찮다. 투명성과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다양성만 추구하다 보면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로스쿨 주최로 지난 4일 열린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방향’ 세미나에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로스쿨 교수의 아들이 아버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보면 공정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입시 관련 자료를 더 공개하고 투명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로스쿨 준비생은 “모호한 정성평가를 강화하면 신림동 변호사시험 학원의 입시 컨설팅업체들 배만 불릴 것”이라고 냉소했다.

이런 걱정이 커지는 데 대해 서울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입학심사위원회에서 여러 위원이 같이 보기 때문에 부정이 개입될 소지는 없다”고만 말했다.

교육부는 로스쿨 입시의 투명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정원의 7% 이상을 취약계층 특별전형으로 선발토록 의무화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특별전형 대상은 장애나 어려운 경제적 배경을 지닌 지원자, 유공자 자녀 등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