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산 신약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한 신속허가제도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상 3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의약품도 판매를 허용하는 조건부 허가 건수가 지난해 급감했기 때문이다.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3상 조건부 임상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4개에 그쳤다. 2010년 2개였던 조건부 임상 의약품은 2015년 12개까지 늘었다가 2016년 8개, 지난해 4개로 급감했다.

깐깐해진 신약 신속 허가… 2년 동안 3분의 1로 급감
3상 조건부 임상허가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치료법이 없는 질환 치료제라고 식약처장이 판단하면 3상 임상시험 자료 제출을 조건으로 의약품 판매를 허가하는 제도다. 환자는 허가가 끝나기 전 신속히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제약사는 제품을 시장에 빨리 출시할 수 있다. 환자와 제약사에 모두 도움이 되는 제도지만 업계서는 제도 운영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조건부 임상허가를 받고 출시한 폐암 신약 ‘올리타’ 개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식약처의 3상 조건부 허가 자체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의약품 개발 단계에서 부작용 논란이나 제품 철수 문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식약처가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약 개발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식약처는 조건부 임상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 ‘획기적 의약품 및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개발촉진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발의했다. 그러나 제도 남용이 우려된다는 일부 반대 목소리에 막혀 2년째 계류 중이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에서는 2015년 한 해에만 40개 제품이 ‘획기적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복잡한 약가제도도 신약 개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약이 건강보험 시장에 진입하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비용 효과성 평가를 통과한 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을 해야 한다. 심평원과 건보공단으로 나뉜 이중 협상 구조 때문에 혁신 신약의 시장 진입 속도가 늦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5% 낮은 국내 약가 구조도 제약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신약 등을 수출하려면 여러 나라 정부와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약가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며 “위험분담제, 이중약가제도 등 기업에 약가 결정권을 좀 더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