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매년 지방 교육청에 보내던 영어교사 심화연수과정 지원금을 올해부터 8억원 삭감했다. 영어교육 관련 예산이 대폭 줄어서다. 교육부 지원이 끊기자 각 교육청도 교사들의 ‘실전영어’ 능력 향상에 들이던 돈을 줄여버렸다. 작년만 해도 9개 교육청에서 300명가량의 교사가 연수를 다녀간 국립국제교육원 산하 제주영어교육센터엔 올해 단 2개 교육청만 연수를 신청했다.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부터 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그나마 사교육 억제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초등 방과 후 영어도 올 3월부터 금지할 태세다. 공교육 정상화는 뒷전인 채 ‘학원 때려잡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어 공교육 정상화 외치더니… 교사 연수비도 없앴다
◆사교육 억제 집착하는 사이…

현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은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일명 선행학습금지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초등생은 3학년이 돼서야 영어를 배울 수 있다. 방과 후 과정을 포함해 학교에선 3학년 전에 알파벳을 가르치면 안 된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원 커리큘럼도 단속 대상이다.

여러 과목 중에서도 영어가 주요 ‘타깃’이 된 건 사교육 열풍의 주범으로 낙인찍혀서다. 약 18조원 규모에 달하는 전체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는 5조원(지난해 통계청 교육통계 기준)을 차지해 규모 면에서 부동의 1위다. 23일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교육과정에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에 시작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올 3월부터 초등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키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모든 아이들의 영어교육 출발선을 같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교육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도 없애겠다고 했으나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정을 1년 유예키로 했다.

◆학교 영어도 손 놓은 정부

정부가 선행학습금지법을 마련한 건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목적에서다. 법으로 영어 사교육을 억제하면서 그 사이 학교 영어교육의 매력을 올려놓겠다는 셈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교육부 영어교육 예산이 매년 삭감됐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독립 부서였던 영어교육팀은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이후 해체되고, 연구사와 사무관 등 두 명이 전담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학교 영어교육을 위한 각종 인프라도 쪼그라들었다. 2016년 고등학교 영어교사 수도 전년 대비 2.7%(이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자료) 줄었다. 주요 과목 중 과학과 사회 교사는 같은 기간 소폭이나마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등 영어과목 임용시험 합격률(지원 대비)도 매년 떨어지고 있다. 2014년만 해도 6827명이 지원해 730명이 합격(10.7%)했으나 2016년엔 6992명이 지원해 396명이 합격(5.7%)했다. 원어민 강사 수는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대폭 감소했다.

그나마 방과 후 영어수업이 사교육 광풍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4년 6조1497억원에 달하던 영어 사교육 시장은 2016년 5조5443억원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영역별 사교육 시장 중 영어의 낙폭이 가장 컸다. 올 3월부터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부모들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영어정책이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6년만 해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국의 초등학교 50곳을 ‘영어 교육 연구학교’로 지정하고 1, 2학년부터 영어 수업을 하도록 했다. ‘학교에서 조기에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2년 후 전체 학교로 확대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각 교육청과 연계해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해 내년께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동휘/구은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