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실제 피해자들이 사기 당한 소화기
사진은 실제 피해자들이 사기 당한 소화기
중국 동포 상인들을 속여 업소 내에 소화기를 설치하게 한 뒤 정상가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받아챙긴 ‘소화기 사기꾼’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지난 4월부터 이달 초까지 8개월 간 금천구 일대 21개 업소에서 소화기 판매 및 설치 명목으로 업주를 속여 약 140만원을 챙긴 40대 남성 A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21개 업소 대부분 중국 동포가 운영 중인 곳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중국인이 밀집한 독산동 남문시장과 신대방역 인근 점포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가게를 찾아가 기존 소화기를 교체해야 한다거나 소화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며 업주들을 속였다. 시중에서 1만5000원~2만원 상당에 거래되는 소화기를 3만~5만원을 받고 팔았다. 판매 이후 6개월이나 1년마다 소화기 교체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국내 소방 규정을 잘 알지 못해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중국 동포 B씨는 “처음에 자신이 소방 관련 분야에 종사한다고 소개하고 영수증에도 소방 시설과 관련된 문구가 적혀있어 믿고 샀다”며 “두 달 뒤 소화기 점검을 해야 한다며 다시 돈을 요구해 화를 내니 그냥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동포들은 안전 교육을 배우거나 소방 규칙을 알지 못해 쉽게 속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중국 동포들이 이 같은 속임수에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 중국 동포 C씨는 “개업한지 3일 만에 가게를 찾아와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소화기 2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해 결국 8만원에 샀다”고 했다.

몇 년에 걸쳐 피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한 중국 동포는 매년 소화기를 교체해야 한다는 말에 속아 3년 동안 총 12만원을 내줬다.

중국 동포가 사기 범죄의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체류 중국 국적자는 작년말 기준 10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어에 서툴고, 한국 물정에 어둡다보니 이들은 노린 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A씨가 금천구 외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만큼 관련 단속과 계도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황정환/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