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위험지도도 중단…안전처 "조사 부족해 발표 하지 않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2012년 양산단층대를 활성단층으로 결론 내렸지만, 공개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생겨 지금까지 발표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활성단층이란 지각활동이 활발해 지진이 발생했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큰 곳을 말한다.

규모 5.8의 대지진이 발생한 경주는 양산단층대에 포함된다.

경주∼양산∼부산에 이르는 170km의 양산단층대는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고리·월성 지역과 가깝다.

20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국민안전처(당시 소방방재청)가 20억원을 들여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R&D(연구개발) 용역을 의뢰했다.

양산·울산 단층을 중심으로 한 이 사업에는 지질연뿐만 아니라 지질학과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당시 연구책임자였던 지질연 최성자 박사는 20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지질자료를 분석해 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측정값을 선으로 연결해 활성단층 지도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최 박사는 "지질조사 결과 활성단층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공청회에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론이 났다"고 덧붙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연구 결과 공개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단층에 밀집된 원전 주변 주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환경단체가 원전 가동에 반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전문가도 과제 기간이 너무 짧아 조사가 불충분했다며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3년안에 울산·양산 단층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 단층을 조사하느라 지표상 흔적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연대 측정방식만 사용해 신뢰성 문제가 제기됐다"면서 "활성단층으로 단정지어 발표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공동 연구단이 이견을 보이자 정부는 3년여에 걸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 연구과제는 2012년 끝나고서 더는 예산을 따내지 못한 탓에 국내 지진 위험지도는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다.

정부는 1994년 원전 부지의 활성단층 논란이 일자 "연구 결과 활성 단층대가 아니며,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결론은 일부 국내외 전문가 판단과 배치했다.

일부 일본 학자는 원전이 밀집된 고리·월성 일대가 활성단층대로, 30년 이내에 한번은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은 이 주장을 반박했다.

양산 일대가 단층이긴 하지만 6천만 년 전에 생성된 '주향이동단층'이라며 활성단층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최성자 박사도 "활단층이라도 한반도 역사상 최대 지진이 규모 6.5로 추정돼 현재 원전의 내진 설계 기준인 0.2g(규모 6.5) 이하는 안전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가 원전 불안감 때문에 양산단층이 활단층이 아닌 것으로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의심했다.

양산단층대에서 최근 일주일 사이 규모 5.1과 5.8, 4.5의 지진이 발생해 활성단층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지질연 이윤수 박사는 "퇴적물이 오랫동안 쌓여 눌리면 안정기에 접어드는데, 양산단층에서 비교적 최근에 퇴적돼 고화되지 않은 채 어긋나 있는 층들이 발견됐다"면서 "그동안의 지질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양산단층을 활단층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2일 규모 5.1, 5.8 지진에 이어 전날 4.5 여진까지 양산단층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진 규모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단층대를 따라 일어나는 것은 맞다"고 분석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도 "규모 5.8 지진을 계기로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것은 분명해졌다"면서 "주변에 위험 단층이 많은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에서도 규모 6.5 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국내 활성단층 지도를 서둘러 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최성자 박사는 "그동안 한반도에 큰 지진이 없었기 때문에 지진 위험지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예산 지원도 중단됐을 것"이라면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지진이 빈번한 서부에 대한 활성단층 지도만 보유하는 실정으로 이해는 가지만, 국내에서도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만큼 활성단층 지도가 필요하다"가 제언했다.

국민안전처는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사실은 인정했으나 고의로 숨기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안전처 관계자는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조사 기간이 짧아 조사가 불충분했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사회적 파장이 큰 점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간에 걸쳐 활성단층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2014년부터 지질연과 대학교수 등으로 자문단을 꾸려 기획했으며,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안전처는 내년부터 2021년까지 1단계로 지진 빈발지역과 인구밀집 대도시부터 활성단층 연구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해당 예산안은 정부안에 확정했으며 연구개발에는 기존 조사결과도 활용할 방침이다.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