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의 '키코 소송'에서 중소기업들은 재판 막바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엥글 교수(67)의 법정 증언이다. 1조원대 키코 소송에서 비장의 카드를 쓰는 데 들어간 비용은 얼마일까.

20일 환헤지피해기업비상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이 엥글 교수를 국내 법정 증언대에 '모시는 데' 들인 돈은 6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학 교수들의 경우 인지도 등에 따라 시간당 50만~500만원이 소요된다.

엥글 교수가 이렇게 많은 돈을 한 차례 법정에 출석한 대가로 받은 것은 아니다. 엥글 교수는 지난 2월부터 17개 중소기업의 키코 관련 계약 수십건을 분석하고 계약의 불공정성을 찾는 작업을 벌여왔다. 이 작업에는 엥글 교수 외에 국내외 교수 4명과 미국 은행 실무자 등이 참여했다. 중소기업 측은 국내 교수들에게도 의뢰했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해외 석학 중에서 적임자를 찾아다녔다. 중소기업을 대리하고 있는 A 변호사는 "엥글 교수에게 지불한 감정료에는 10개월간 분석팀이 연구를 진행한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엥글 교수는 돈과 관계없이 사명감에서 방한한 것"이라고 밝혔다.

감정료 6억원은 중소기업 17개사가 분담했다. 140여개 중소기업이 키코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비밀 유지를 위해 초기에 소송에 나선 17곳만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엥글 교수는 법정에서 고액의 감정료가 아깝지 않은 증언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편에서 '키코는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은행의 환헤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행에 유리한 계약'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엥글 교수는 국내 교수들이 중소기업의 의뢰를 외면할 때 흔쾌히 분석 작업을 맡아줬고 한국까지 와서 증언까지 해준 만큼 그 분의 선의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