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KAIST)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로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

단돈 76원을 들고 상경해 자수성가한 한 농장 대표가 자신이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인 3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KAIST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KAIST(총장 서남표)는 12일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68)이 자신이 평생 모은 3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키로 약정했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은 이날 KAIST 교내 대강당에서 열린 발전기금 약정식에서 "카이스트의 과학기술로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내가 기부한 재산이 보탬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 출신의 김 회장은 열일곱 살이던 1958년 단돈 76원을 들고 상경해 식당,운수회사 직원 등 갖은 고생 끝에 1988년 용인에 밤나무 농장인 서전농원을 세웠다. "서울에서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김 회장은 "정말 지독하게 일하고 무섭게 절약했다. 무더운 여름날 1원을 아끼려고 남들 다 먹는 사카린 음료조차 사먹지 못했다"고 회고하며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았던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말했다. 부안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6 · 25 전쟁으로 토지를 모두 빼앗기자 돈을 벌어 다시 되찾겠다는 각오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어렵게 번 돈인 만큼 뜻있는 곳에 써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남달랐다. 김 회장은 지난 6월 뇌졸중 발병으로 투병 중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김삼열씨(60)와 아들 세윤씨도 그의 기부를 적극 지지했다. 김 회장은 "처음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아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줬다"며 "아들도 매달 일정 금액을 유니세프에 후원금으로 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2005년 후학 양성을 위해 써 달라며 고향인 부안군의 '나누미 근농 장학재단'에 장학금 10억원을 쾌척한 바 있다. 또 부친상을 치르고 남은 부의금도 친척 자제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김 회장은 "'버는 것은 기술,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며 "열일곱 살에 상경해 남들 다 사먹는 음료수조차 사먹지 못했지만 후학을 위해 쓰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