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가족의 의미가 자꾸만 강하게 느껴져요. 그게 너무 괴로워요" 한국에 입국한 지 이제 몇 년이 지나 다른 탈북자들로부터 `남한 사람 다 됐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 한 탈북자는 추석을 쇠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남녘의 동포들이 `민족 대이동'에 나서는 추석은 남한에 온 지 오래되는 탈북자일수록 `신세대 실향민'의 한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명절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행사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올해는 그나마 별다른행사도 없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가족들과 친구들끼리 조용한 추석을 보낼 전망이다. 일부는 통일전망대를 찾아 `신세대 실향민'의 한을 달랠 작정이다. 지난 1996년 12월 16명의 대가족을 데리고 남한에 온 김경호(2001년 사망)씨 일가족은 추석 당일인 11일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공원묘지 탈북자 전용묘역을 찾아 성묘할 예정이다. 김씨 일가족은 이후 북한에 남아있던 4명이 2000년에 추가로 탈북했고, 탈북 당시 임신중이던 김씨 딸 명순(35)씨가 아들(7)을 낳아 지금은 20명으로 늘었다. 명순씨는 9일 "오랜만에 온 가족이 어머니(최현실.64)가 계신 집에 모여 추석을보내고 11일에는 아버지 묘에 성묘를 하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미리 시립묘지 탈북자 전용 묘역은 북한이탈주민후원회가 남한에서 세상을 떠난 탈북자들을 조성했고, 100기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에는 김씨 외에도 무연고자 등 10여명의 탈북자들이 외롭게 잠들어 있다.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전도사는 쓸쓸한 추석을 보내는 탈북자 20여명과 함께모 교인이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포도농장으로 포도를 수확하러 갈 계획이다. 반면, 납북됐다 귀환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각자의 고향에서 그동안 추억으로만떠올렸던 추석 명절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지난 1973년 꼬막채취 어선 대영호를 타고 납북됐다 지난 6월 돌아온 김병도(50)씨는 이번 추석에 어머니 이주순(80)씨 등 가족들이 살고있는 경남 통영에서 31년만의 추석을 다시 맞기로 했다. 1970년 4월 `봉산 22호'를 타고 납북됐다가 1998년 탈북한 납북 귀환자 이재근(64)씨는 울산 형님 댁을, 1967년 4월 납북됐다 2001년말 북한을 탈출해 귀환한 납북어부 진정팔(68)씨는 경북 포항 고향을 찾아 각각 추석을 보내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