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1914-2000) 시인이 생전에 김소월 후손에게 취직, 학비제공 등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가을호는 소월의 셋째 아들로 현재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는 김정호(70)씨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소월의 손녀 은숙씨의 고교시절 학비를 거의 미당이 댔다"고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호구지책으로 「가요 60년사」라는 음반을 외판하던 김씨에게 미당은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등 생계를 보살폈다. 1967년에는 미당의 주선으로 당시 예술원 회장이자 문인협회 이사장인 월탄 박종화가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에게 취직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월탄이 "국민시인 소월의 자식이 남한에서 레코드판 외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면 이북에서 얼마나 악선전하겠나. 나라 망신이지. 잘 찾아왔네"라며 추천서를 써줬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월탄과 미당, 시인 구상이 연명으로 원고지에 작성한 이 추천서는 "우리 민족이 일정치하에 있을 때 순국한 우리 국민시인 김소월 선생의 친자녀들 가운데 남하한 유일인자로서, 그 근실한 성행과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직상태에 있어 그 가족이 생사의 위경에서 헤매임을 보고, 오등은 이를 선도안착시키기 위해 귀하께서 특별한 영단을 내리시어 그에게 적직을 주시어 회생의 광명이 있게 하여 주시길 무망하여, 이에 추천하나이다"라고 적었다. 이를 계기로 김씨는 국회의사당 직원으로 8년여 근무하다 퇴직했다. 김씨는 이 인터뷰에서 "이북에 큰형 준호, 작은형 은호, 유복자인 동생 낙호, 누나 구원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으나 아직 차례가 안됐는지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미당의 주례로 1986년 결혼한 소월의 손녀 은숙씨는 현재 충남 아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 영돈씨의 결혼식 주례는 구상 시인이 서는 등 원로문인들이 소월의 후손들과 끈끈한 인연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부친의 저작물과 관련된 인세를 받아본 적이 없고 일부 성의있는 출판사들이 인사로 사례비를 준 적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몇 년 전 소월장학회를 설립하기 위해 10억원 가량 모금했다가 추진하던 분이 작고한 뒤 기탁금을 환불했다"면서 "우리 애들이 돈 좀 많이 벌어서 번듯하게 소월기념사업을 하는 걸 보았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