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유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광주 북구 유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크게 완화해서 향후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천은 물론이고 지방 광역시 등 많은 도시에서 30년 이상 된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수십 년 전 오래된 공법을 바탕으로 일률적으로 건설된 아파트이고 낡은 설비, 층간소음, 주차장 부족 등 주거환경이 악화하였기에 재건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특히 1기 신도시를 포함한 수도권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획일적으로 조성돼 최근 공급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비해 주거환경이 현저히 열악하고, 주민 편의시설이나 교통 접근성 등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미래 지향적인 주거 공간을 건설한다면 미래세대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울시도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전환지침'까지 마련, 복합개발을 통해 가락, 반포, 압구정, 여의도, 잠실, 이수 등 14개 지구 등을 미래형 주거단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이번에 발표된 내용만 보면 크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한 번 지은 건물은 30년이 될 때마다 매번 재건축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재건축을 앞은 200만호를 모두 철거하면 수도권에만 3077만톤 이상의 건설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30년이 지나면 이 정도 규모의 건설 폐기물이 또 발생하겠죠.

현재 수도권 매립지는 2025년 1월 1일부터 건설 폐기물 반입이 중단될 예정입니다. 2025년 8월에는 수도권 매립지의 대체지가 없어 민간 폐기물 매립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데, 수도권에는 1곳 밖에 없어 재건축에 따른 대규모 건설 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없습니다. 당장 발생할 건설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도 문제인데, 30년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친환경 저탄소 시대 그린뉴딜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입니다.
아파트를 철거하며 발생한 폐기물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파트를 철거하며 발생한 폐기물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면 이번 재건축 규제 완화에 이어 꼭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과 같이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선진형 아파트 건설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세종시에서 1급 장수명 아파트 시범사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아파트를 일반적인 벽식구조가 아닌 라멘구조로 건설하면 공사비가 3~6% 늘어나지만 건설 폐기물은 85% 이상 줄어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 검증된 만큼 1급 장수명 아파트인 라멘구조 형식으로 아파트를 건설하면 재건축 안전진단을 완화해 주거나 정밀안전진단을 생략하도록 해주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더 주어 늘어나는 공사비를 감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도 재건축으로 발생할 엄청난 건설 폐기물 처리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30년 뒤에 미래세대가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우리와 같이 대규모 재건축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처음부터 많은 고민을 거쳐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바꿔야 할 부분들은 간단한 도시재생이나 리모델링합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30년마다 재건축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양산하는 정책은 피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100년 이상 가는 선진형 주택을 공급해 세월이 흘러도 시민들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은 좋지만, 1급 장수명 아파트를 조건부로 달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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