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 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김규철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 부회장은 2012년 7월 대표이사에 취임할 때 세 가지 금지 사항을 강조했다. ‘거짓말’ ‘아부’ ‘탐천지공(貪天之功·남의 공을 가로채는 것)’이다. 여기에는 ‘항상 기본(상식과 원칙)에 충실하라’는 김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배어 있다.

시행사(개발업체), 시공사, 투자자, 분양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충돌이 자주 발생하는 부동산 신탁업의 특성상 고객과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계를 대면 회사 존립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게 김 부회장의 설명이다. 한국자산신탁이 ‘깐깐하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로 평가받는 이유다.

김 부회장은 종합부동산그룹인 엠디엠(MDM)이 2010년 3월 한자신을 인수한 뒤 11년째 경영을 맡고 있다. 부동산 신탁 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인자한 옆집 아저씨 인상이지만 업무만큼은 철저하다. 한자신이 지난해 14개 부동산 신탁사 중 영업수익(매출)과 이익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이다. 부동산 신탁은 소유주가 신탁한 부동산을 개발해 수익을 되돌려주는 사업을 뜻한다.

‘금융맨’ 출신 부동산 전문가

김 부회장의 고향은 전남 장흥이다.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는 것을 싫어했다. 불의도 참지 않아 학창 시절 ‘대쪽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지름길로 빨리 가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리더라도 올바른 길로 가야만 하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부동산업계에 몸담기 전에 김 부회장은 ‘금융맨’이었다. 1982년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영향으로 대학교 4년간 제대로 수업을 들은 기억이 없다“며 “학업에 대한 아쉬움과 취업 걱정에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고 했다.

교수를 꿈꾸며 모교인 전남대에서 2년간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결국 서울 여의도에 정착했다. 1988년부터 2007년까지 한신경제연구소, 광은창업투자(광주은행 자회사),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등에서 일했다. 김 부회장은 “경제연구원, 벤처캐피털리스트, 증권맨 등 다양한 업무를 섭렵했다”며 “금융권에서 고객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신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을 떠난 뒤 고향 선배 문주현 회장이 이끄는 부동산 디벨로퍼인 엠디엠그룹에 2007년 합류했다. 고향 친구 소개로 2000년대 초 문 회장을 알게 된 게 인연이 됐다. 김 부회장은 “증권이나 벤처투자 일을 하니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우연한 기회를 통해 부동산과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

김 부회장의 집무실은 항상 열려 있다. 직원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규모 오찬 간담회를 연다. 실무자와 만나는 기회도 늘렸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직급에 상관없이 곧바로 실무자와 대화한다. 리더가 직접 소통해야 직원들이 책임의식과 프로정신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강조한다. “인간 관계의 기본이 곧 배려”라는 게 김 부회장의 생각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구성원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수록 회사라는 유기체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부동산 금융업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해결해주는 것이 본질”이라며 “업무는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자신 인수 때도 김 부회장의 꼼꼼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자회사였던 한자신은 2010년 공기업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돼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다. 당시 경쟁 상대로 시중은행 등이 참여하면서 “계란으로 바위 깨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런 평가를 뒤집기 위해 금융 전문가인 김 부회장이 인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디벨로퍼(개발업체)에 대한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디벨로퍼가 부동산 신탁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았다. 김 부회장이 쌓아온 네트워크와 철저한 분석,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결국 공기업이었던 한자신을 인수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신탁업계 1위로 올라서

김 부회장은 가장 보람 있는 일로 2016년 한자신의 증시 상장을 꼽았다. 부동산신탁 업계 최초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코스피 입성을 통해 부동산 신탁업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폭을 넓히는 동시에 신탁업 자체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자신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1년 설립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수익 기준으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영업수익(연결 기준)은 2019년(2233억원)보다 7.5% 늘어난 240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6.6%, 46.5% 증가한 1787억원, 1300억원을 달성했다.

김 부회장은 한자신의 실적 호조 이유로 모회사 엠디엠과의 시너지를 꼽았다. 디벨로퍼의 풍부한 경험과 부동산 사업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신탁업과 잘 맞는다는 것이다. 한국자산캐피탈, 한국자산에셋운용 등 금융 계열사와 손잡고 신탁 사업과 연계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엠디엠을 통해 사업성을 종합적으로 따지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 비해 분양 실패 확률이 낮은 편”이라며 “종합 부동산금융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부회장의 올해 목표는 분명하다. 부동산신탁 시장 점유율 1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그는 “매년 직원들이 작성하는 사업 계획을 평가할 때 ‘한계를 두지 말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며 “정부 규제 등 각종 변수가 늘어나면서 부동산 경기가 민감해진 만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규철 부회장은

△1960년 전남 장흥 출생
△1978년 전남 장흥고 졸업
△1982년 전남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한신경제연구소
△1991년 광은창업투자 부장
△1999년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
△2000년 NH투자증권 상무
△2007년 엠디엠 부사장
△2010년 한국자산신탁 부사장
△2012년 한국자산신탁 대표이사


장현주/김진수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