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안 무서운 집값부터 전세난까지
되돌아본 혼란의 2020년 부동산시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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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내 집 마련을 주저했던 김 과장. 올해도 결말은 같았다. 하락장의 시작인 줄 알았던 지난 봄이 바닥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막차라도 타겠다며 서둘러 집을 산 동료들의 집값은 그새 수억원이 뛰었다. 김 과장의 전셋집 보증금도 수억원이 뛰었다. 유난히 많은 정책이 쏟아지는 동안 정부를 믿고 기다렸지만 기회는 또 그렇게 가버렸다. 주변에선 그를 ‘벼락거지’라고 불렀다. 다시 분루를 삼킨 김 과장의 1년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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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 대책의 위력
연초만 해도 집값 전선은 고요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의 주간 단위 아파트가격 변동률은 하락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9년 연말 나온 ‘12·16 대책’의 약효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상승론자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설 연휴가 지나면 오를 것”이라며 앵무새 같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명절이 지나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제 꺾일 때도 됐잖아.’ 김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값이 오른다는 이야기는 어디 먼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같은 부서 이 대리가 분양권을 알아보고 왔다던 수원 집값이 수억원씩 뛰었다. 그러자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책을 내놨다. 수원 영통과 권선·장안구, 안양 만안·의왕구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였다. 대출 한도는 더욱 줄어들었다. 종전 60%가 적용되던 담보인정비율(LTV)은 9억원을 기준으로 초과분에 대해선 30%, 이하분에 대해선 50%가 적용되도록 바뀌었다. 김 과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투자로 큰 돈을 벌겠다며 임장 채비까지 하던 이 대리가 결국 매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배가 아플 뻔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와 여의도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와 여의도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4월 - 하락장의 전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따금 구경 삼아 다녀오던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이제 문을 여는 곳이 없었다. 중개업소 사장들 사이에선 집을 보러 가도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조차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집값은 곤두박질쳤다. ‘아크로리버파크’는 고가 대비 7억원이나 떨어져 거래됐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보유세 과세기준일(6월 1일)을 앞두고 절세매물이 늘어나는 시기였지만 예사롭지 않은 신호였다. 통계에서도 서울 전체 아파트값 변동률 수치 앞에 마이너스(-)가 붙기 시작했다.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꺾이자 집값 하락은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김 과장은 하락장의 서막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즐겨보는 부동산 유튜브 채널들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바닥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개발하기로 한 서울 용산정비창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개발하기로 한 서울 용산정비창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5월 - 10년 전의 추억
집값도 잠잠한데 뜬금없는 공급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공공재개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김 과장은 뉴타운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가 20대일 때 시작했던 사업 대부분은 30대가 끝나가는 시점까지 마무리되지 못한 게 많았다. 다 허물어가는 집들의 가격은 또 얼마나 올랐던지. “지금이라도 빌라를 사야 한다”며 투자자들을 호도할 장사치들이 눈에 선했다. 김 과장의 눈엔 용산국제업무지구란 단어도 들어왔다. 사업을 다시 추진하면서 용산정비창 일대에 주택을 많이 짓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던 것이다. 김 과장이 기억하는 용산은 늘 10년 뒤를 기약하는 곳이었다. 10년 전에도 ‘10년 뒤엔 강남을 넘는다’고 했었다.

대책의 말미엔 3기 신도시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사전청약이 부활했다. 이것 또한 10년 전 보금자리주택의 유물이었다. 김 과장은 당시의 파국을 기억했다. 30대에 당첨돼 40대에 입주하고, 50대에 전매제한이 풀린다던 사전청약. 그래도 1년 뒤면 사전청약을 시작한다니 내심 들떴다.
6월 - 불길한 신호
통계상 두 달 넘게 이어지던 집값 하락세는 6월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멈췄다. 경북 구미나 경남 창원처럼 그동안 아파트 공급이 많고 가격도 크게 떨어진 곳들만 골라서 갭투자를 하러 다니는 선수들도 많았다. 김 과장은 500만원이면 된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지만 애써 참았다. 방사광가속기인지 입자가속기인지가 들어선다는 충북 청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저러다 10년 정도 물려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아내에게 부동산 주기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이미 거품의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것이 골자였다.

사실 문제는 지방이었다. 서울 집값은 완만하게 움직였지만 지방 아파트가격은 이 즈음부터 상승폭이 커졌다. 정부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규정 강화를 담은 ‘6·17 대책’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법인 투자자들의 경우 ‘관에 못을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력한 규제가 나왔다. 종합부동산세 공제액(6억원) 폐지와 단일세율(6%) 적용, 법인세 인상이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그동안 법인 투자가 성행했던 지역을 엑셀로 정리하면서 연말까지 집값이 떨어질 곳을 예측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은 없었다.
7월 - ‘부동산은 끝났다’고 생각하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세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금지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세상은 넓고 부자들은 많았다.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59㎡가 25억원에 실거래됐다는 소식이 주요 포털사이트 뉴스란에 가득했다. 3.3㎡당 1억원을 넘겨 거래된 역대 두 번째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강남 집값은 늘 언론이 올리지.” 김 과장은 이렇게 뉴스 댓글을 달았다. 강남 사랑은 언론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의 강남 사랑도 화제가 됐다. 다주택을 정리하라고 종용하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반포 대신 청주 아파트를 팔았고, 김조원 민정수석은 집 대신 직(職)을 포기했다.

부동산시장이 요란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추가대책을 내놨다. 집을 절대 못 사게 하겠다는 ‘7·10 대책’의 신호는 단호했다. 취득세는 다주택자들에게 최고 12%까지 중과세가 적용되도록 바뀌었고 종부세 최고세율은 종전 3.2%에서 6.0%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양도세 중과세율도 종전보다 10%포인트씩 인상됐다. 조정대상지역 3주택자는 그동안 최고 62% 세율을 적용받았지만 2021년 6월 1일 이후부턴 최고 75%를 적용받게 됐다.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신설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주택을 사는 순간부터 보유하는 동안, 그리고 팔 때까지 매순간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집을 살 사람이 있단 말야?’ 김 과장은 이제 정말 부동산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작 안 사길 잘했다는 생각도 조금은 해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8월 - 대책, 대체 언제 끝나는지
그러나 집을 사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지는 동안 세종 집값은 연신 상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니마니 군불을 때는 동안 주간 상승률이 2.96%-2.77%-2.48%-1.59%를 나타냈다. 2.96%의 상승률은 한국부동산원이 주간 단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1년 간 지속되면 누적 100%를 넘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집값은 이미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올라 있었다. 그맘때쯤 ‘벼락거지’라는 말이 나왔다. 갑자기 횡재를 맞은 ‘벼락부자’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의미였다. 김 과장을 가리킨 말이기도 했다.

장관은 청와대에 불려갔다. 어떻게 해서든 공급 확대 방안을 마련하라는 게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석 달 연속으로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지만 마지막 대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새 대책이 나올 태세였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이번엔 아예 대통령이 나서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자 곧바로 ‘8·4 대책’이 나왔다. 절대 ‘영끌’을 하지 말라던 정부였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은 공급대책이었다. 수분양자가 20년 동안 조금씩 아파트 지분을 사모으는 지분적립형 주택의 개념이 등장하는가 하면 재건축에도 공공참여 방식이 도입됐다. 공공분양에만 존재하던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민영아파트까지 확대됐다. 모든 물량을 추첨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김 과장은 조금 기분이 나빴다. 신혼 기간이 끝나자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확대되더니 가점을 차근차근 모으자 이번엔 추첨제가 확대됐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11월 - 다시 전세난
집값은 선택의 문제였다. 가격이 올라도 안 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셋값은 생존의 문제였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됐을 땐 김 과장도 기뻤다. 집주인이 대뜸 보증금을 2억원이나 올려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김 과장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전월세상한제는 기존 계약까지 소급적용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자 집주인은 자신이 직접 입주할 테니 나가라고 맞섰다. 강남에 사는 집주인이 이사 올 도리는 없어 보였지만 김 과장이 그것을 증명할 방법 또한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전국 전셋값이 연신 최고 상승률 기록을 갈아치우자 정부가 또 나섰다. 이번엔 전세대책이었다. 요란하게 나왔지만 핵심은 초라했다. 공공전세를 도입하겠다는데 그마저도 빌라가 대부분이었다. 새 아파트 청약경쟁률도 기본 200 대 1, 300 대 1을 넘기고 있었다. 어디 하나 불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서울 시내 한 중개업소 매물판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중개업소 매물판의 모습. 연합뉴스

12월 - 올해도 간다
졸지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김 과장은 급하게 전셋집을 보러 다녔다. 살던 집보다 좁고 낡은데 보증금은 5000만원을 더 얹어줘야 했다. 그나마도 요즘 귀한 매물이란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었다. 아내는 이제 짜증조차 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쯤엔 ‘12·17 조치’가 나왔다. 울산 남구 등 전국 36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250개 지자체 가운데 절반가량인 112곳이 규제를 받으면서 정부 공인 마크를 달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 오른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는 투자를 망설이던 창원 성산구도 있었다. ‘10년 전 하락장과 똑같은 수순이야.’ 다시 주문을 거는 동안 김 과장의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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