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이사갈 집의 방향에 따라서 건강, 사업, 재물, 가정 등이
잘되거나 못된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액운이 있거나 불길한 일이 생길 것으로 예측되는 방향으로는
이사를 하지 않았다.

특히 세살 겁살 제살 등 이른바 삼살방으로는 이사가지 않았으며, 나이
운수 날짜 일진 등이 맞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같은 풍습은 현대 과학에 맞지 않는 미신으로 일축하기보다는 선조들이
이사로 인해 변화되는 주거 환경에 조심했던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선조들이 이사에 신중을 기했던 까닭은 풍수적인 입장과 함께 심리적인
영향을 중요한 것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사는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사를 함으로써 살아가는 습관이 달라지게 되며 가옥의 구조, 지리적
변화 등 부동산적 환경도 현격히 바뀐다.

또 주거 형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생활형태 역시 달라진다.

특히 집안에 노인이나 어린이, 병약자가 있을 경우 이사로 인해 변한
환경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했을 경우 잘 뛰놀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노인들은 폐쇄된 집안에 갇혀 지냄으로써 신체 리듬이 깨어질 수
있다.

오순도순 함께 살던 지역 주민들과 멀리 떨어져 살게되면서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햇빛을 충분히 받던 남향집에 살다가 북향의 주택으로
이사한다면 환경이 변하여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도시 가구의 60% 이상이 남의 집에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고,
거주 기간도 평균 1년4개월이라고 한다.

내집을 마련하는데 적어도 8~9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적어도
6번 이상을 이사해야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제는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어서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주류가 돼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파트를 분양 받을 때 방향이나 위치를 자기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그저 추첨에 의해서 정해지는 대로 입주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일반인들이 이사를 중시하지 않는 경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이사는 방위 계절 집안사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는게 순리이다.

요즘처럼 쉽게 이사가는 풍조에서 벗어나 선조의 경험적 지혜를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광영 < 한국부동산컨설팅 대표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