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29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29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당선인의 지역 공약을 구조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각 중앙부처에 공약 실현 여부를 검토하는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데 이어 지방자치단체 의견도 수렴할 계획이다. 지역공항·철도지하화 등 사회기반시설(SOC) 공약은 윤 당선인이 직접 약속했더라도 비용 효율성이 떨어지면 재검토 또는 폐기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까지 검토보고서 제출해 달라”

[단독]'尹 지역 SOC 공약' 구조조정 착수…"효율성 떨어지면 과감히 배제"
29일 인수위에 따르면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24개 중앙부처에 ‘윤 당선인의 권역별 7대 과제’ 및 ‘현장 유세 발표 공약’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수위는 당선인이 약속한 사항이라도 예산·법적 문제 등을 고려해 실현이 어려울 경우 과감하게 국정 과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당선인 공약이라고 해서 100%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인수위 출범 당시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거의 다 국가 주요 정책으로 그대로 채택해 부작용이 많이 나왔다”며 공약 구조조정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역발전에 꼭 필요한 공약인 경우 검토보고서를 통해 파악한 법·제도적 어려움이나 예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보고서에는 △실현 가능 여부 △구체적 실행 방안 △법률문제 △소요 예산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제출 기한은 오는 4월 1일이다.

중앙부처 보고가 완료된 이후에는 다시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검토보고서를 요청한다. 중앙부처 의견만 수렴하면 지역 특수성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중앙과 지방 의견을 종합해 오는 4월 14일까지 지방공약 실천 보고서를 만들고,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전까지 국정과제로 완성한다는 일정이다.

지역공항 등 ‘돈먹는 하마’ 조정 1순위

지역공항·철도지하화 등 일부 선심성 사회기반시설 공약은 재검토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부들이 선심성 공약을 이행한 결과 예산만 잡아먹고 이용객은 없는 ‘애물단지’가 된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지역공항은 무리한 공약 실천이 지방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한 대표 사례다. 2020년 기준 전국 15개 공항 중 활용률이 1% 미만인 공항이 원주(0.1%), 사천(0.2%), 군산(0.3%), 포항(0.3%), 무안(0.6%)으로 다섯 곳이나 된다. 김포·김해·제주·대구 등 대규모 공항이 이들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윤 당선인은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광주공항·무안국제공항 통합 △서산민항 건설 △제주2공항 건설 △청주국제공항 거점공항 육성 등 6개 지역공항을 건설하거나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철도 지하화 공약도 검토 결과에 따라 윤 당선인이 번복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당선인은 △경부선 서울·부산·대전 구간 △호남선 대전 구간 △경인선 서울·인천 구간 등의 지하화를 약속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부동산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철도를 지하로 집어넣고 주택을 그 위에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철도 지하화 공약은 선거 때마다 등장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2013년 시내에 있는 지상철도를 지하화하는 데 38조원이 든다고 추산했다. 대전시는 시내 경부·호남선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 10조2000억원이 소요된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6·1 지방선거가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대규모 구조조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윤 당선인 공약 일부를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려 하는 것도 변수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약이 타당하다면 예산에 적극 반영해야 하지만 경제적 타당성이 없고 선심성인 공약들은 빨리 폐기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고 제언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