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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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와 경제분야 최고 권력은 청와대와 삼성입니다. 두 조직에서 어제 새해 신년사가 나왔습니다. 신년사를 통해 두 권력이 지금의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어제 신년사 연설을 하는 20분 동안 총 5699글자를 읽었습니다. 연설문은 자부심, 희망, 모범국가,성공 등 긍정적 단어로 가득했습니다. 대통령은 임기동안 한국을 세계가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모범 방역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로, 튼튼한 안보국으로, 글로벌 문화선도국으로,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로 만든 것을 자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우리 국민이 이룬 국가적 성취를 부정하거나 폄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대통령은 또 코로나도, 집값도, 탄소중립도, 글로벌 공급망도 모두 잘 대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합니다. 남북간 관계에 대해서도 "지금의 평화가 우리가 주도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탱되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공임을 상기시킵니다.

대통령의 신년사엔 위기 의식이 없습니다. 한국은 말 그대로 태평성대 그 자체입니다. 분열된 국론, 사정권력의 정치화, 파탄난 민생, 코로나 방역위기, 고립무원 외교 등 수많은 실정에 대해서는 함구합니다. 때문에 사과와 반성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2022년 신년사 전문]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82463

삼성전자도 어제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공동명의로 신년사를 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신년사엔 위기의식이 가득합니다. 덕담은 "지난 한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술개발에 힘을 쏟고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한 줄 뿐 입니다.

그 다음은 모두 위기 대응에 대한 독촉입니다. 경영진은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경직된 프로세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문화를 과감하게 버리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게 세 가지 입니다. 고객 우선주의, 실패를 용인하는 수용과 소통의 문화, 준법의식. 모두 삼성전자 뿐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특히 한국 정치권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내용들입니다.경영진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10년, 20년후 삼성전자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는 지금 이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강조합니다.

[삼성전자, 2022년 신년사…"가치있는 고객경험으로 사업품격 높이자"]
https://bit.ly/3HyWUwd

어떤 신년사가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는 각자 판단해 볼 문제입니다. 예상대로 대통령의 신년사는 언론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습니다. 임기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뜬구름을 잡았다거나, 낯뜨거운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반성없이 허무맹랑한 소설만 썼다" "5년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자화자찬, 딴세상 인식이 마지막 신년사까지도 반복됐다"고 혹평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제 종편인 JTBC가 대통령 신년사를 중계하지 않았다는 뉴스는 눈에 띕니다. 지상파 3사를 포함해 TV조선 등 다른 종편들은 일제히 정규 프로그램 시간을 일부 미루거나, 정규 프로그램을 중간에 끊고 뉴스 특보 형태로 신년사를 중계했습니다. JTBC는 그 시간에 자사 토·일 드라마 '설강화' 재방송을 내보냈습니다.

JTBC가 왜 신년사 대신 재방송 드라마를 내보냈는 지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만한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대통령의 신년사 연설문은 수시간전에 언론사에 미리 배포됩니다. 보도 편의를 위해서입니다. JTBC가 대통령 신년사를 방영하지 않은 이유가 신년사가 언론들로부터 혹평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구나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자사 드라마가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 등으로 시청률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 시간에 욕심을 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