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국제인권단체로 꼽히는 휴먼라이츠워치(HRW)가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HRW가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을 향해 우려를 담은 공식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21번째다. 직전 박근혜 정부 때(5번)의 네 배가 넘는다. 정부·여당이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에 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에 나서며 한국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HRW는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청와대와 국회 등에 보낸 서한에서 “단순히 허위라는 이유로 표현을 제한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제 인권원칙에 위배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개정안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지적하며 “언론사가 소송을 유발할 수 있는 보도를 피하려고 자기검열을 하면 비판적 보도와 인기 없거나 소수 의견에 대한 보도 등 다양한 표현을 제한할 잠재성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HRW가 한국 인권 상황에 대해 보도자료 형태로 공식 성명을 내놓은 건 모두 21번이다. HRW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환영과 제언을 담은 성명과 국내 전반적인 인권 상황에 대한 성명들을 제외하고 정부·여당의 정책을 특정해 비판한 공식 성명만 13번에 달한다.

통상 HRW의 성명은 여성·성소수자(LGBT) 인권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 진보적인 이슈들에 집중돼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북한 인권, 대북전단금지법,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

2019년 탈북 선원 2명을 판문점에서 안대를 씌워 강제 북송한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북한 인권 관련 성명도 초반에는 “한국은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에 대해 4·27 정상회담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2018년 4월)는 등 제언 형태에 가까웠지만 이후 “한국 정부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문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한 국제법을 위반했다”(2019년 11월)는 식으로 비판 수위가 올라갔다.

지난해 12월에는 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강행 처리 움직임에 “한국 정부는 자국 시민들이 북쪽 이웃들을 대신해 그들의 기본권을 수행하는 것보다 북한의 김정은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만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필 로버트슨 HRW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지난 7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전직 인권변호사가 이끄는 한국 정부가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정권 중 하나인 북한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모순적이고도 슬픈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HRW의 태도 변화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국제사회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HRW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신들의 진보적인 원칙하에서 일관된 입장을 보였는데 최근 한국을 향한 비판이 늘어났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정보 선택권마저 통제하면서 기대를 저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으로 향하는 표현의 자유를 막는 대북전단금지법에 이어 국내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