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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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1985년생)의 '90도 폴더 인사'가 화제다. 국가 의전서열 7위인 그가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차관급' 김창룡 경찰청장(1964년생)에게 먼저 다가가 깊숙히 고개를 숙인 것이다. 수행원 한 명과 백팩을 매고 있던 이 대표는 김 청장 옆 수행 경찰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먼저 인사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함이 신선해 보인다며 꽤나 뜨거운 반응이다. 지하철 출퇴근 같은 탈권위주의적 모습과 맞물려 호평이 쏟아지지만 달리 생각할 부분도 많다. '0선의 젊은 정치인'이라는 개인적 입장과 '제 1야당 당수'라는 사회적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야합과 무사안일에 나라의 미래를 좀먹는 정치판을 갈아보라고 대표로 밀어준 당원들과 다수 국민의 뜻에 배치되는 일일 수 있다.

차라리 돋보인 건 김 경찰청장의 절제된 인사였다. 그는 덩달아 폴더 인사를 하지 않고 상체를 가볍게 숙이는 자세를 취했다. 군복을 입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처럼 경찰 조직과 제복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품격을 지켜냈다.

이 대표의 폴더 인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김부겸 국무총리와는 양측 모두 폴더 인사를 해 머리를 부딪힐 뻔 했다. 두 사람은 양손까지 맞잡고 서로 몸을 낮췄다. 과장된 행동을 하는 코미디 프로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만남은 더 했다. 둘은 '허리 폴더'는 물론이고 무릎까지 90도 가까이 굽히며 역대급 인사장면을 연출했다. 원래 '폴더 인사'로 유명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도 이 대표는 환상 케미를 과시했다. 삼촌과 조카뻘인 둘은 보는 이들이 민망할만큼 경쟁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이런 인사는 열린민주당 최강욱대표와 정의당 여영국대표를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과도한 인사는 사실 요즘 여권에서 자주 목격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연초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때 남다른 폴더 인사로 매스컴을 탔다. 허리를 90도로 꺾여 진심 허리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임명식에서 황송한 듯한 몸짓과 함께 깊은 폴더인사를 선보였다. 앞선 정권의 장관 임명식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문 정부의 아이콘 조국 전 장관도 폴더인사 전문이다. 그는 구속영장실질심사 후 동부구치소에서 풀려나면서 정문 야간근무자에게 무안할 정도로 몸을 숙이는 낯선 장면을 연출했다.

서서하는 인사는 상체를 15~30도 숙이는 게 보통이고 무난하다. 더 공손하게 최고의 예를 표시할 때도 45도 가량 숙이는 정도로 충분하다. 더 숙이는 것은 인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말이다. 이준석 대표의 폴더 인사도 메시지의 발신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1야당 대표가 아니라 정치인 이준석이라는 잘못된 번지로부터 발신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한국적인 태도의 장점도 있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들은 6년 전 미국을 방문해 6.25 미군 참전용사들 앞에서 한국식 큰 절을 했다. 당시 미국 참전용사들은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며 기립박수를 쳤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게 핵심이다. 드레스 코드가 있듯 세계공통의 인사 매너도 있다. 공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처럼 폴더 인사를 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30대 젊은이를 국가최고수반이 만나주는 것에 황송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일 것인가. 심리적으로 대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당하게 국사를 논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또 김정은을 만난다면 어쩔 것인가. 이 대표는 “정권창출에 성공한 후엔 특사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 때도 자신만의 예를 갖춘다며 폴더 인사할 것인가. 그런 폴더 인사를 보는 씁쓸함은 가수 조용필만으로도 충분하다. 파격도 지나치면 무질서요 무례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