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총참모부가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병력 배치를 예고한 17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해안을 순찰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과 관련해 “북한군 동향을 24시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며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 46명은 17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규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이주환 통합당 의원 등은 이날 오후 '북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행위 규탄 결의안'을 내고 "한반도의 안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라고 비판했다.이들은 "대한민국 국회는 지난 16일 북한이 남북 협력의 상징이자 판문점 선언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행위를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다"며 "남북 정상 간 합의 파기는 물론이고,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의 자산과 정부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이자 명백한 도발 행위"라고 했다.이어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임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향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태의 책임은 모두 북한 정권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결의안을 제출한 통합당 의원들은 "북한이 예고한대로 개성공단 지역에 군대가 재배치되거나, 핵 또는 미사일을 이용한 추가 무력도발로 한반도 긴장 상태를 만들 경우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들은 북한 정권에 판문점 선언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도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에는 △대북 정책 재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북한 도발 방지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 확립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대비 태세 구축 △군사 도발 행위 발생 시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처 등을 요구했다.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청와대와 정부가 17일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 및 대남 비방·비난에 강하게 맞대응하면서 남북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의 강공모드 전환은 북한이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측 예산이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는 무력시위를 벌인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전달한 평화 메시지를 “역스럽다(역겹다)”고 폄하하는 등 그동안 남북이 쌓아온 최소한의 신뢰를 북한이 저버렸다는 인식이다.북한 군부가 이날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금강산 지구, 개성공단 재무장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남북관계는 ‘전쟁 위기설’까지 돌았던 3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이틀 연속 강경대응한 靑청와대가 이날 “몰상식한 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틀 연속 북한에 강경대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대응 이유로는 먼저 북한이 4·27 판문점선언을 무력화하는 직접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그간 북한의 ‘말’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군사적 ‘행동’에는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북한이 2017년 잇달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했을 때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엄중히 규탄하고 분노한다”고 밝혔다. 4·27 선언의 상징과 같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철거를 중대한 도발로 간주한 것이란 해석이다.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쏟아낸 것도 강경대응의 배경으로 꼽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선언 20주년 행사 영상 메시지를 두고 “자기변명과 책임 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고 평가절하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원로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을 보니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우리 측 특사파견 제안까지 폭로김여정 밑에서 대남사업 업무를 맡고 있는 장금철 북한 통일전선부장도 이날 담화를 내고 “지금까지 북남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은 일장춘몽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며 “남측 당국과 더는 마주앉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장금철은 전날 청와대가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유감을 나타낸 것에 대해 “지난 시기 오랫동안 써먹던 아주 낡은 수법대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가소로운 입질까지 해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라인들이 이날 일제히 대남 비방·비난 메시지를 쏟아낸 것이다. 북한은 또 이날 남측이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김여정이 이를 거절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혔다.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대남 비방·비난은 내부에 누적된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적어도 한두 달은 이런 남북 간 강 대 강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서울 불바다’ 다시 꺼낸 북북한군은 전날에 이어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북한 관영매체는 이날 ‘서울 불바다’설까지 거론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대변인 발표문을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예고했다.군사 전문가들은 개성과 금강산에 연대급 규모(2000여 명)의 포병 및 기갑부대가 전진배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9·19 군사합의 파기를 공식화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해 잊혀가던 서울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서울 불바다는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에서 북한 측 대표가 군사도발을 위협하며 꺼낸 단어다.우리 국방부는 “실제 (군사적) 행동이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정호/강영연 기자 dolph@hankyung.com
BBC·CNN "대화재개 대비 위기 생산"…악시오스 "올 핵협상 동결"NBC "한미에 경종, 한미 분열 시도…北군부의 김정은 압박과 관련"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최근 대남 적대 행위에는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적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동시에 방위비 협상으로 갈등을 빚는 한미동맹 간에 불협화음을 조장하려는 전술적 의도도 있다는 견해도 함께 내놓고 있다.BBC 방송은 북한이 표면적 이유로 내세운 대북 전단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면서 "분석가들은 북한이 외교적 대화가 재개될 경우 더 많은 지렛대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CNN도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대북전단 문제를 위기 생산에 이용하고 있다고 추측한다"며 "이는 북한이 이전 협상에서 긴박감을 조성하거나 한미 간 불협화음을 조장하려 사용했던 전술"이라고 분석했다.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이 코로나19로 악화했다며 "좌절·불만을 표출해야 했지만, '이웃이 미우면 그의 개를 발로 찬다'는 말처럼 미국에 직접 도발하면 보복이 우려된 것"이라는 이승현 세종연구소 연구원의 견해를 소개했다.NBC 방송은 북한은 항상 한미동맹을 깨려는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에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으로 인한 양국 간 갈등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당시 대북 특별대표였던 글린 데이비스는 최근 웹세미나에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한미동맹 약화와 함께 북한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미 정보당국의 경우 북한이 비핵화 합의에 이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 뒤 계속해서 핵개발을 해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NBC는 특히 "북한이 이런 특별한 조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김정은이 북한 엘리트와 군부로부터 받는 거대한 내부 압력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또 "이번 폭파는 북한이 여전히 핵 폐기에 관심이 있다고 믿는 한미 국민에게 매우 큰 경종이 될 것"이라며 "북한은 타협과 신뢰 구축 조치에 관여하기보다는 폭력과 협박 외교의 길을 분명히 선호한다"고 덧붙였다.악시오스는 "북한이 더욱 적대적인 새 시대를 알리는 극적인 상징 조치를 취하면서 2018년 시작된 남한과의 데탕트(긴장완화)의 잔유물을 쓸어버렸다"며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올해 핵 협상은 동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아울러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수사적 공세를 통해 이 사안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