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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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관련 범죄 수사를 경찰이 주도적으로 행사하게 될지 정치권과 법조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타고 다음달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안이 큰 틀의 변화없이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까지 수사과정에 개입하기 어려워진다. 법무부는 이와 별도로 검찰 조직에서 41개 직접수사 부서를 폐지키로 했으며 이 가운데는 선거사범 전문 수사부서도 포함돼 있다. 선거 범죄 수사와 관련해 경찰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권,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 자신감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관련 법안이 다음달 3일 국회에 부의되고 17일까지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처리될 예정이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현재 공수처 법안을 중심으로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의는 중단된 상태”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경우 여야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서 국회 표결처리를 앞두고 수정대안이 상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정대안도 여야간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여야 대치 국면에선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국회 의석수 면에서 자유한국당(108석)과 바른미래당(28석)을 빼더라도 민주당(129석)과 정의당(6석), 민주평화당(4석), 대안신당(10석)에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들의 표만 합쳐도 의결 정족수(148석)는 넘길 수 있기 때문에 법안 통과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경찰이 선거법 위반 아니다면 기소 힘들어져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4월 15일 열리는 총선 관련 범죄 수사에서 만만치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나온다. 수사권 조정법안 부칙엔 시행일자를 국회 통과 이후 6개월 이후로 명시하고 있다. 다음달 국회에서 법안이 개정되면 내년 총선이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

수사권 조정 법안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를 지휘가 아니라 협력 관계로 규정하고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까지 검사는 경찰 수사과정에 개입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된다. 경찰이 선거 범죄 사건을 자체적으로 종결하면 검찰은 기소를 해서 죄를 묻기 어려워진다. 공직선거법에서는 벌금이 100만원을 넘으면 당선이 무효가 될 정도로 선거과정의 불법 행위를 엄격하게 따진다.

경찰이 종결한 사건에 대해선 재정신청이 불가능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검찰 수사에서는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재정신청 제도를 통해 구제하고 있다. 재정신청은 고소나 고발이 있는 특정범죄사건을 검사가 불기소처분하였을 때 고등법원이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뜻에 따라 그 사건을 관할지방법원의 판단을 받게하면 해당 사건에 대해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보는 절차다. 이번 수사권 조정법안에선 경찰이 수사를 종결한 사건을 재정신청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경찰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제기하면 바로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때문에 재정신청보다 훨씬 간이하게 불복절차를 규정해놨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재정신청은 선거사범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경찰이 공소시효 만료 직전에 선거 사건을 종결하게 되면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공소시효를 막지못해 구제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경찰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나 시정요구도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경찰이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없다고 했을 때 재판까지 가기가 상당히 어려워진 셈이다. 경찰이 ‘국회의원 배지’를 붙여두느냐 떼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 지금보다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검찰 “편파적 수사 바로잡기 어려워질 것” 반발

경찰의 손에 국회의원 당선 무효 여부가 맡겨지는 상황이 예상되자 검찰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수사권 조정법안 관련 의견서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에 치명적인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검은 “경찰이 선거에 관여할 목적으로 사건을 방치 후 공소시효 완료가 임박해 송치하거나, 청탁을 받아 경쟁 후보자에 대한 편파적 수사 후 종결하는 사례가 발생해도 검사가 관여해 바로잡기 어렵다”고 밝혔다. 선거사범은 공소시효가 6개월이다. 경찰은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선거 수사를 대부분 맡고 있다.

한 형사법 전문가는 “선거 사건은 당사자들의 진술 번복도 빈번한데다 적용할 혐의를 선택하는 과정도 매우 복잡해 법률적 지식이 필요하다”며 “검찰의 도움없이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려면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검찰의 통제없이 선거 수사를 전담한다면 청와대 등 윗선의 입김이나 여권 등 정치적 외풍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감안할 때 중립적으로 선거 관련 수사를 진행할 지 의문”이라며 “검사 지휘라는 사법적 통제장치가 없어지면서 지역과 유착된 일부 경찰은 특정 후보에 유리한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각종 위원회를 통해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 장치들을 마련했다"며 "검찰은 그동안 중립성을 지켰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에 처해졌나"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법무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에 따라 선거 관련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법무부는 다음달까지 검찰의 직접 수사 부서 41개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 공정거래조사부, 조세범죄수사부 등과 함께 선거사범을 전담하는 공공수사부(옛 공안부)가 포함돼 있다.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내년 총선 수사를 경찰이 주도하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공공수사부가 없어지면 공안사건이라는 분류자체가 없어져 수십년된 선거 수사 노하우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며 “미국도 선거 사건은 헌법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별도 조직에서 수사할 정도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라고 말했다.

한편 형사사법 체계의 큰 변화를 앞두고 국회에서 공론화가 전혀 안되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 부회장인 이완규 동인 변호사는 “우리나라 70여년 형사사법제도 역사에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데, 여야간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법률적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이인혁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