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슈에 '북핵 협상' 밀려나자 北, 美와 '대화 불씨' 살리기 안간힘
북한이 유엔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 압류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당장 반환해야 한다고 유엔 본부에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하며 국제사회를 상대로 여론전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해제 및 미국과의 협상 재개 메시지를 행간에 담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사진)는 21일(현지시간) 미 뉴욕 유엔본부 브리핑룸에서 약 15분간 영어로 기자회견을 했다. 김 대사는 “미국의 압류조치 자체가 대북 적대 정책의 일환이며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어긴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공화국 자산이자 우리 주권이 완전히 행사되는 영역”이라며 “미국은 지체 없이 화물선을 반환해야 한다. 극악한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모든 것은 미국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미 법무부는 지난 9일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석탄 불법 운송 혐의로 압류했다. 석탄 수출과 외부 이동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 위반이다. 미 정부 당국이 유엔 결의안을 어겼다는 이유로 북한 선박을 압류한 건 이 사례가 처음이다.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직접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건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이번 회견은 유엔 출입기자들에게 사전 예고까지 됐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외교적 공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미·북 협상 테이블로 다시 올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한다. 지난 4일과 9일 두 차례 단거리 미사일 발사 후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해 철저한 무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관심사는 이란을 비롯한 중동 문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협상에 쏠려 있다”며 “북한으로선 미·북 협상이 소강국면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이란과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북한을 종종 언급한 것도 북한 시각에선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내 핵시설 다섯 곳 중 한두 곳만 폐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란 핵 보유 불허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의제에서 북한 문제가 점차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터라 북한이 우리 정부에 손을 내밀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는 6월 말 서울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남북한 대화에 전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 정부에 손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 고위급 회담 등 공식 접촉이 다음달 중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