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 잇따라 발표했지만
野 "논의 더 필요하다" 제동
與는 당내 이견도 조율 못해
대통령이 당부하면 역효과?…'정쟁 국회'에 발목 잡힌 규제완화 법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산업화 시대의 경부고속도로처럼 데이터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한 대폭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마련된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빅데이터 3법’ 개정안은 문 대통령 공언 후 8개월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야당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 정책들이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과거 여당 시절에는 찬성한 정책이라도 현 정부에서는 일단 반대하고 보는가 하면, 여당도 민감한 정책은 시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면서 섣불리 추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생과 개혁법안들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발목 잡히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당부하면 역효과?…'정쟁 국회'에 발목 잡힌 규제완화 법안

규제 완화 외쳤지만 정쟁에 발목

문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국회 단계에서 가로막힌 정책은 빅데이터 3법과 원격의료 허용,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방안 등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년을 전후로 규제 개혁을 골자로 한 경제 혁신 방안을 연이어 발표했다. 작년 8월 청와대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같은 달 31일엔 빅데이터 3법을 제안했다.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에는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방안도 약속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거나 아예 법안 마련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 정쟁으로 의사일정 자체가 협의되지 않아 상임위원회가 안 열리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야당의 반대가 완강한 점이 주된 이유다. 각 상임위의 여당 간사 측은 “‘서둘러 논의하자’고 주장하면 야당은 ‘법안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비슷한 답변이 돌아온다”고 답답해하고 있다.

빅데이터 3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빅데이터 3법의 ‘모법’ 성격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상임위 파행 끝에 지난 1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소위에 처음으로 올라왔지만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야당의 답변만 받았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의원 청부 입법 형식으로 토론이나 별다른 논의 없이 법안을 발의하는 데 동의하지 못한다”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충분히 위원들에게 설명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은 “대통령 공약 법안은 야당으로부터 더 꼼꼼한 심사가 이뤄진다”고 털어놨다.

靑 관심 법안은 반대 vs 법안 자체 허술

정보통신망법 역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KT 청문회 등으로 오랜 기간 파행을 거듭하면서 아직 소위에 법안을 올리지 못했다. 신용정보법도 사정은 비슷하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의 최운열 의원은 “정부나 대통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안을 야당이 고의로 지연시키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며 “(내년 총선 준비로) 상반기를 넘어서면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방안도 2년 가까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작년 11월 28일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국가직 전환 시행일까지 합의했다. 하지만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 당시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 등 지도부가 법안 통과에 반대하자 같은 당 송언석 의원이 표결을 하기 전에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열린 지난 9일 국회 행안위에서도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놓고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민주당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에 야당의 협조가 없었다고 지적한 반면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부처별 조율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은 “정부, 행안부, 소방청, 재정당국 간 이견 조율이 굉장히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강경파 설득하지 못하는 여당

원격의료는 여당 자체적으로 추진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다. 문 대통령은 원격의료와 관련해 지난해 8월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도서벽지에 있어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원격의료 하는 것은 선한 기능”이라며 “원격진료는 의료 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관련한 의료법 개정은 민주당 내부 의원들의 반대가 상당하다. 8개월 동안 해당 법안이 아직 발의되지도 못한 이유다.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여전히 제한적 원격의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있다”며 “섣불리 발의했다간 오히려 법안 통과만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여당이 어떤 양보도 없이 자기 밥그릇만 챙길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며 “다급한 건 여당이니 일정 부분 양보하며 규제 완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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