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거운동은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선거유세 차량과 운동원을 대거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영국은 철저히 당원과 자원봉사자 중심의 낮은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 사용될 유세차량들이 지난달 말 경기 평택의 차량제조업체 주변 도로가에 줄지어 서 있다(왼쪽 사진). 지난달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노동당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를 호소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한국의 선거운동은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선거유세 차량과 운동원을 대거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영국은 철저히 당원과 자원봉사자 중심의 낮은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 사용될 유세차량들이 지난달 말 경기 평택의 차량제조업체 주변 도로가에 줄지어 서 있다(왼쪽 사진). 지난달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노동당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를 호소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지난 2일.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 주변은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선거유세 방송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보행자들은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국 각지에서 유세차량의 소음 공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잇따랐다.

반면 지난달 지방선거를 치른 영국에서는 유세차는커녕 확성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런던에서 만난 한 교민은 “유세차를 동원했다가는 단박에 낙선이다. 선거법에 허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영국 시민들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후보자 얼굴도 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유권자는 투표용지 7장을 받는다.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각 의원, 비례대표, 교육감 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겹치면 투표용지는 8장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 중 후보들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서울의 한 50대 유권자는 “지역 일꾼을 뽑는다고 하지만 실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거문화 차이는 한국의 ‘깜깜이 선거’에서 비롯된다. 선거 한 달 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2주간 공식선거운동을 하는 현행 선거법상 단시일 내 얼굴과 기호를 알리기 위해 시끌벅적한 소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반면 영국인들은 자기 동네의 카운슬러(지방의원)가 누군지 대체로 알고 있다.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에는 지역 카운슬러의 전화번호가 대부분 입력돼 있다. 동네 가로등을 고쳐달라는 민원부터 집 증축, 주류 판매 등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간 갈등에 가장 먼저 개입하고 중재하기 때문이다.

카운슬러가 재선에 도전했을 때 유권자가 얼굴을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달 선거에서 런던 해머스미스 자치구에서 한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카운슬러에 당선된 노동당 소속 권보라 씨는 “친절한 이웃 주민들 덕분에 동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과는 달리 영국 지방선거가 카운슬러만을 뽑는 단일선거라는 점도 유권자의 혼선을 방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방의회가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로 복잡하게 나눠지지도 않기 때문에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기가 더 쉽다.

◆묻지마 ‘공(空)약’ 남발

대전 유성구의회 ‘라’ 선거구에 출마한 이희환 자유한국당 후보의 1호 공약은 ‘도시철도 2호선 DTX 건설’이다. 구의원의 역량을 한참 벗어난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다.

이 후보처럼 기초의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SOC 사업을 내건 출마자는 전국에 퍼져 있다.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광명시의원 후보는 ‘현충공원역 유치’라는 ‘국회의원급’ 공약을 내걸었다. 부산 남구 구의원에 출마한 강건우 민주당 후보는 용호동 도시철도 건설을 전면에 내세웠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의 공약과 같다.

황당한 공약도 수두룩하다. 이만규 한국당 대구시의원 후보는 달성토성, 경상감영, 대구읍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취지는 좋지만 이 역시 시의원으로서 임기 내 이뤄내기 어려운 ‘입타령’에 가깝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려면 일단 잠정 목록에 포함된 이후에도 숱한 검토 절차를 넘어야 한다. 시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반해 영국은 철저히 ‘주문자 생산 방식’으로 공약이 설계된다. 공천권을 쥔 당원들이 제시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공약집을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헤아려 ‘알아서’ 공약을 내놓는 방식이라면, 영국은 공약개발 과정에서 소속 당원들이 개입한다.

권씨는 “지방 재정을 고려하지 않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과 네거티브(상대방 음해)는 설자리가 없다”며 “누가 더 민심을 정교하게 반영한 공약을 내놨는지, 우리 지역 일꾼답게 내가 잘 아는 얼굴인지 여부가 표심의 방향을 가른다”고 말했다.

런던=박종필/박재원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