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작업을 수행중인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례
특정 작업을 수행중인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례
혹시나 했던 우려가 역시나로 드러났다.

사건의 발단은 더불어민주당의 의혹 제기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지난 1월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정부 비판적인 기사 특정 댓글에 대해 공감수가 폭발적으로 높아진 점을 주목했다.

당시 정부 비판성 댓글이 네이버에서 판을 치자 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해 문제를 네이버 측에 제기했고 , 네이버도 내부 점검 과정에서 매크로 활용 흔적을 확인해 같은 달 19일 경찰에 고소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 수사 결과 '드루킹' 김모(48)씨 등 '댓글 조작단' 일당이 반복 작업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이버 댓글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조작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김씨 등 3명은 1월 17일~18일 4시간 동안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이버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정' 기사의 댓글 중 '문체부 청와대 여당 다 실수하는 거다. 국민 뿔났다', '땀 흘린 선수들이 무슨 죄' 등 2개의 댓글에 614개의 ‘공감’을 누르도록 조작했다.
경제장관회의에도 드루킹 사건 관심 (사진=연합뉴스)
경제장관회의에도 드루킹 사건 관심 (사진=연합뉴스)
드루킹은 이 여론조작을 진행하던 도중인 1월 18일 0시30분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온라인 여론점유율=대통령 지지율이다"라고 적었다.

드루킹은 "대중들은 대부분의 뉴스를 모바일을 통해서 포털, 특히 네이버 기사를 통해서 본다. 그러니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라면서 "댓글 점유율이 결국 대통령 지지율에 반영된다"며 여론 조작 파워를 과시했다.

앞서 드루킹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째를 맞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고마워요 문재인', '문재인 우표' 등을 띄우고 블로그에 "우리가 선출한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고 싶은 100일 취임기념 선물"이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호의적이었던 드루킹이 180도 돌변해 정부비판 댓글에 공감을 몰아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드루킹은 막강한 댓글작전으로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접근했다. 드루킹은 약 1년 4개월동안 김경수 의원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시할 용도로 기사를 3190건 전송했다.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연락을 받았을 김경수 의원은 가끔 '고맙다'는 답변을 했을 뿐이지만 이에 자신감을 얻은 드루킹은 대선 이후 인사권에까지 손을 뻗치기 위해 김 의원을 압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자신이 민주당에게 유리하도록 댓글 작업을 이정도 했으니 자신의 이정도 부탁은 들어줘야 하지 않냐는 보상심리가 드루킹을 엇나가게 했다.

실제 작년 연말까지 70%를 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1월 넷째 주 들어 처음으로 50%대까지 떨어졌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 조사에서 1월 첫째 주 71.6%로 시작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셋째 주 66%로 떨어지더니 넷째 주에 59.8%로 급락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같은 기간 8%포인트가 떨어졌다. 불과 3주 사이에 지지율이 10%포인트 안팎이나 요동친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남북 단일팀 구성 등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둘러싼 논란과 가상 화폐, 최저임금 등 정책 혼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 시기 드루킹이 네이버의 '평창 단일팀' 기사에 붙은 정부 비판 댓글의 추천 수를 높인 것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댓글 조작을 통한 지지율 떨어뜨리기는 거꾸로 지지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루킹은 지난 대선이 한창이던 작년 4월 24일 "두 번의 TV 토론으로 문재인이 2위 주자와 격차를 크게 벌렸는데, 그 토론에 대한 여론을 우리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엔 자신들이 온라인 여론을 압도적으로 점유해,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고도 했다. 이로 인해 야당에서는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극렬 지지층의 댓글 작업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댓글조작 관련 부실수사 규탄하는 자유한국당 (사진=연합뉴스)
댓글조작 관련 부실수사 규탄하는 자유한국당 (사진=연합뉴스)
민주평화당, '민주당원 댓글조작' 수사 촉구 (사진=연합뉴스)
민주평화당, '민주당원 댓글조작' 수사 촉구 (사진=연합뉴스)
대검 앞 기자회견하는 바른미래당 (사진=연합뉴스)
대검 앞 기자회견하는 바른미래당 (사진=연합뉴스)
네이버는 댓글 정책에 동일한 댓글 반복 금지와 약관에 자동댓글 금지를 명시했지만 드루킹과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네이버가 해마다 방지책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크로의 기술력은 날로 고도화됐다.

그렇다면 '매크로 프로그램'은 무엇이길래 이렇게 여론 조작이 가능했던 걸까.

매크로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조합해 컴퓨터가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도록 짠 프로그램이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마우스나 키보드를 반복 조작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컴퓨터로 자동 조작되는 것을 말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도 네이버 검색 시 특정 키워드 게시글이 상위에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마케팅 업체들이 사용해 오고 있다.

해당 작업에서 목표로 하는 성과물에 따라 프로그램 개발비는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까지 견적이 나올 수 있다.

매크로의 기술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우리도 특정 정당으로부터 카페 회원수나 특정 키워드가 담긴 포스팅을 네이버 상단에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특정 키워드를 입력했을때 네이버에 해당 글이 상위에 노출되게 하는데 이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키워드당 최소 50만원정도 비용을 받는다.

상위 노출을 위해 수백개의 댓글 또는 추천을 눌러줘야 하는데 이런 힘든 수작업을 매크로 프로그램이 대신 한다고 보면 된다.

네이버는 댓글 조작을 막기 위해 하나의 IP에서 여러 아이디로 접속할 경우, 해당 IP를 차단하는 보안기술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네이버가 아이디, IP 당 댓글 수를 제한해도 매크로는 또 다른 편법으로 이를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 공감은 한 IP, 한 아이디당 한 번 씩 할 수 있으므로 아이디를 중복으로 생성하고 vpn아이피를 이용해서 한개의 아이디로 한 IP에서 댓글을 작업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보통은 유심을 여러개 사서 핸드폰에 꼈다 뺏다 해서 아이디를 생성하는데 중국에서 아이디를 사오려면 개당 3000원~1만2000원으로 가능하다.

관계자는 "이같은 매크로는 페이스북에도 활용이 가능해서 페이스북 아이디만 많으면 매크로를 통해 SNS상에 기사를 퍼가거나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경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드루킹 일당은 네이버의 보안을 뚫기 위해 스마트폰의 IP를 지속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활용했다.

이들은 IP주소가 하나로 고정된 컴퓨터와 달리, 스마트폰의 비행기 모드를 이용할 경우 광역 IP를 사용해 IP가 유동적이라는 점을 이용해 포털의 보안을 뚫고 스마트폰 170여 대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댓글의 추천 수를 조작했다.

뛰는 네이버 위에 훨훨 날았던 매크로 조작.

매크로를 이용해 넷심(네티즌들의 마음)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책 방지가 시급한 상황이다.
네이버 방문한 바른미래당 댓글조작 대응 TF (사진=연합뉴스)
네이버 방문한 바른미래당 댓글조작 대응 TF (사진=연합뉴스)
야당의 민주당원 댓글조작 진상조사단 의원들은 18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네이버 본사를 방문해 댓글조작 방지 대책 등을 추궁했다.

포털업계도 이같은 매크로 조작에 대한 대안책 마련에 분주하다.

네이버 현재 대응 대책으로는 ▲네이버 아이디 생성 ▲로그인 ▲댓글 등 세 단계에서 이용자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아이디를 만들려고 할 때 인공지능(AI)이 이를 차단하는 내용이 메인이다.

불법 IP주소·번호를 통해 아이디가 생성되면 AI가 이를 인지해 1분 이내에 서비스 사용을 제한한다. 로그인 단계에서는 위치·시간 정보를 활용해 의심되는 로그인에 캡차(문자 배열 이미지를 보여주고 해당 문자를 입력해야 넘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 확인을 요구한다.

댓글 개수는 하루 20개로 제한하고 동일 댓글에도 캡차 확인을 요구한다.

카카오 역시 올 1월부터 캡차를 댓글 정책에 적용해 활용하고 있다. 동일 IP주소·아이디로 동일 댓글을 반복할 경우 중간에 캡차가 떠 확인을 요구한다. 이용자의 하루 댓글 수도 30개로 제한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포털이 거대 권력으로 떠오른 만큼 뉴스 아웃링크 방식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댓글수·인기 기사 등 포털 댓글은 이용자를 포털에 사용자를 집중시키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뉴스를 클릭했을때 포털 내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하는 아웃링크 방식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현재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