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도발로 '파격' 없었던 연설…17년 전 DJ 베를린 선언과 닮은꼴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한 ‘쾨르버 연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3월 같은 곳에서 한 ‘베를린 선언’과 매우 닮아 있다. 문 대통령은 당초 베를린 선언을 뛰어넘는 대북 정책 구상을 밝힐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도발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구상을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쾨르버 연설에서 천명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5대 원칙은 베를린 선언의 3대 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도발 절대 반대 △흡수통일 지양 △남북 간 화해·협력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 체제 안전 보장,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마련, 비정치적 교류 협력 사업 보장 등 다섯 가지 대북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평화 협정 제안,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 남북 당국 간 대화, 특사 교환 등 문 대통령이 북한에 한 구체적인 주요 제안도 베를린 선언에 담긴 내용이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한 지 3개월 만인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에 응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이 그랬듯 이른 시일 내 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취임 후 2년 만에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김 전 위원장에게 신뢰의 메시지를 보냈다. 베를린 선언 직전까지 남북 간 비밀 접촉을 통해 사전에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대북 정책 구상을 밝혔다. 더욱이 독일 출국 하루 전 ICBM을 쏘아올린 북한과 쾨르버 연설 내용을 사전 교감했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국제사회가 제재 강도를 높이는 등 북한의 고립이 더욱 심해지면 결국에는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