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가 17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됐다는 소식에 대기업들은 “올 것이 왔다”며 짙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비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시민단체 특유의 시각으로 자신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란 우려도 많았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던 대기업들의 전횡과 불공정거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걱정이 더 많지 않겠느냐”며 “지배구조 업무를 하는 기획실뿐만 아니라 협력사와의 상생업무를 맡고 있는 구매분야 임원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김 후보자의 자문에서 비롯됐다.

4대 그룹이 아니더라도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으로 공정거래법 규율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도 김 후보자의 성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걸리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후보자가 2006년부터 올 3월까지 11년간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각을 세운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본인이 오랫동안 축적한 자료를 통해 대기업들을 정밀폭격할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업들이 예측할 수 있는 일관된 규제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투자 고용 등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외로 김 후보자가 합리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용한 의사는 환자를 살리지만 돌팔이 의사는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며 “기업 현실을 잘 아는 만큼 규제 정책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김 후보자는 이제 정책을 기업 현실에 직접 적용하는 정부기관의 장이 된 만큼 종전에 비판이 자유롭던 교수나 시민단체 입장에서 벗어나 더 신중하게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중소기업들은 공정위의 보호막이 더 두터워질 것인 만큼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홍보실장은 “김 후보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공정한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좋은 일자리는 본질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나오는 만큼 기업들이 위축될 수 있는 지나친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