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이미지 탈색' 비판 잇따라…국편, 해명자료 내 조목조목 반박

김용래 = 정부가 '밀실 편찬'이라는 비판 속에 추진해온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면서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에서 박근혜 교과서, 효도 교과서,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거슬렀다는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과 새마을운동 등 공적에 대한 서술이 늘고 인권탄압 사실 등을 축소 기술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집필진 구성과정의 불투명과 구성된 인사들의 우편향 논란, 근현대사 부분의 역사학자 배제, 역사의 '도구화' 지적 등 다양한 층위의 비판이 거세다.

국정교과서를 집권후반기 주요과제로 삼아 "혼이 비정상" 등의 어록을 남기며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단축'까지 거론한 상황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 수순에 내몰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29일 국사편찬위원회 명의로 15페이지에 달하는 해명자료를 내 지적된 사항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 박정희 '독재 이미지' 탈색 시도 의혹…"박근혜 교과서"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장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이날 국회의원-비상대책위원 연석회의에서 "이번 역사교과서 내용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철회를 해야 할 만큼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박 대통령에 의한, 박 대통령을 위한 '박근혜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정 한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내용은 4.5쪽으로, 3∼4쪽 가량이었던 기존 검정교과서들보다 늘었다.

교과서 전체분량이 검정교과서에 비해 20% 가량 준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 시대의 공(功)에 대한 서술이 사실상 대폭 확대된 셈이다.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등의 성과를 자세히 기술했지만, 동백림사건을 '계속되는 안보 위기'라는 소제목에서 북한의 교포와 유학생 포섭 기도라고 소개할 뿐 수사·정보기관의 고문 등 심각한 인권탄압이 자행됐다는 내용은 생략됐다.

5·16을 '군사정변'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권찬탈 당시 군복을 입은 박정희 소장과 차지철 등 군인들의 사진은 빼는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포항제철 제2고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과 함께 '철강 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포항제철은 세계적인 철강 회사로 성장했다'는 사진설명을 수록했다.

5·16을 다룬 대목에서는 박정희 소장 대신, 군인들이 탱크를 끌고 서울 도심을 장악하는 모습을 원경에서 찍은 사진을 배치했다.

보기에 따라 박정희로부터 쿠데타라는 '헌정 유린'의 이미지를 탈색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국정교과서의 박정희 정부 시기의 기술에 대해 중도성향 교사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박정희 정부의 관련 서술을 과다하게 편성하고 실정의 불가피성을 변호하는 등 균형 잃은 역사 서술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시기에 아버지를 '복권'시키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기획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는 "기존 교과서와 비교해 정치 상황에 대한 서술은 비슷하고 경제발전 과정 서술은 다소 늘어난 측면이 있다"며 기존 교과서와 비교한 도표 자료까지 제시했다.

이 도표에 따르면 국정교과서의 박정희 정부 관련 서술은 7.5페이지로 지학사(8), 천재(9), 미래엔(7), 동아출판(8)보다 적거나 비슷하고 금성(4.5), 리베르(5), 비상(6.5), 교학사(6.5)보다는 훨씬 많은 것으로 돼 있다.

박정희 정권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국편은 "유신체제를 독재체제로 명시하고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과 당시 진행된 반 유신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사진 및 사료와 함께 풍부하게 제시했다"고 밝혔다.

국편은 "다만 당시의 국제 정세와 안보위기 상황을 함께 서술한 것은 학습자가 독재 체제 성립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기존 교과서에도 유신 성립 이전 국제정세 변화와 안보 위기 관련 내용을 배치하고 있으며 향토 예비군 창설 사실도 기술돼 있다"고 반박했다.

◇ 박근혜 정부 '새마을운동 세일즈'…국정교과서에 호의적 서술 대폭 늘어
특히 새마을운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21세기형 신(新) 농촌개발 패러다임'으로 띄우기 위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으로 홍보해온 대표적인 '정책한류'의 소재였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의 서술분량 확대는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후 해외를 상대로 벌여온 이른바 '새마을운동 세일즈'는 관가에서도 '관 주도'의 낡은 패러다임의 부활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서 새마을운동은 "정부의 독려로 시작됐지만,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농촌의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근면·자조·협동정신을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돼 도로·하천 정비, 주택 개량 등 농촌 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3년 유네스코는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등 호평 위주이고, 비판적인 내용은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줄 뿐이다.

이에 대해 전국역사교사모임 김태우 대표는 "기존 검정교과서들의 새마을운동 묘사는 설명과 함께 문제점도 언급하고 분량으로만 봐도 중립적이었다"며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이것 하나만 봐도 박근혜 대통령의 '효도 교과서'라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국편은 그러나 "새마을 운동 관련 서술 분량이나 내용은 기존 검정 교과서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어 확대·과장 서술이라 볼 수 없다"며 "새마을 운동이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됐다는 문제점을 함께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국정교과서, 우편향 논란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의 후신"
국정교과서는 집필진 구성의 편향성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표방하며 출범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들이 집필진에 다수 포진돼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학회의 초대 회장은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우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현장 채택률이 극히 저조했던 교학사 검정교과서의 대표 저자다.

이번 국정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이주영, 이민원, 김권정, 나종남, 김명섭 교수 등이 이 현대사학회 출신이다.

상명대 주진오 교수(역사학)는 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발표되지 않은 심의위원에는 (현대사학회 인사들이) 더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며 "국정교과서는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로, 이미 교육부가 그렇게 밀어줬지만 0.1% 채택에 그친 교학사 교과서의 후신"이라고 말했다.

중도·진보성향은 물론 보수성향 학자들도 집필참여를 대거 거부하면서 '원로' 학자들이 많이 참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집필진 명단을 보면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명예교수'가 상당수다.

원로들이 많이 집필에 투입되면 학계 정서상 소장학자들과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려워 내용이 원로들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전히 논쟁거리가 많은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이런 집필진 구성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역사학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원로학자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1980∼90년대의 역사적 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제목에 못 달고 동학혁명을 운동으로 폄훼하는가.

역사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 엉터리 역사학자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끝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교과서 편찬을 추진해온 것도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관계자는 "작년 교육부는 국정화 여부에 대한 여론을 듣겠다고 하고서는 몰래 국정화추진 TF를 운영했고 행정예고 기간 동안 교육부에 도착한 수십만 건의 반대의견을 펼쳐보지도 않은 채 국정화를 강행했다"며 "국정교과서 추진과정도 민주적 절차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편은 "비록 필자 중 일부가 한국현대사학회에 참가하거나 과거 일부 보수적인 발언을 했지만 이들은 학문적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과정과 편찬기준에 준거해 집필했다"고 반박했다.

국편은 "현대사 집필진에는 정치사, 경제사, 군사사 전공자로서 다수 연구성과를 제출한 전문 학자들이 참여했다"며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남북 분단)에서 헌법 가치에 맞는 국가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헌법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했고,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한 경제발전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제사 전공자가 참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