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체제 허물고 주한미군 철수 노린 의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미사일) 발사 도발을 전후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퍼붓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초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낡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한 이후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뉴욕 채널을 통해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의'선(先) 비핵화' 요구에 막혀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평화협정 없이는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평화협정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도 겉으로는 비핵화가 최우선 목표라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확인하면서도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가 본격 실천되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현재의 정전협정은 폐기된다.

1953년 7월 미국과 북한, 중국이 서명해 체결한 정전협정은 남북 사이에 각각 2㎞ 넓이의 완충지역인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전쟁을 정지시켜 놓은 문서이다.

DMZ를 관리하고 남북 적대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와 군사정전위원회를 뒀다.

정전협정과 달리 평화협정은 일시적으로 중지된 전쟁을 공식 종결하고 영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성격을 가진다.

북한은 1963년 9월 북한 정권 창건 15주년 기념대회에서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 주장한 이후 1970년대 초까지 이를 반복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남북 상호불가침을 맺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다가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시 허담 외교부장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허담은 "남조선에 있는 외국군대는 유엔군의 모자를 벗어야 하며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일체 무기를 가지고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북미 평화협정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대로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되고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전 체제를 무너뜨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의도에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군비통제에도 응하지 않는 등 평화공존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거드는 양상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 푸잉(傅瑩) 대변인은 4일 "한반도에서 전운이 사라진 지 60년이 더 지났지만, 정전협정만 있을 뿐 평화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상황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전후로 전통의 동맹인 중국을 등에 업고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 것은 무엇보다 평화협정 체결 자체에 대해 진정성 있는 제의를 했다기보다는 대북제재 예봉을 피하려는 노림수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의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과 감시를 다른 곳으로 따돌리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매체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이 임박한 지난달 29일 "전쟁 위험에 불안을 느낀 동북아시아 지역 나라들과 세계의 공정한 여론은 미국이 하루빨리 북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대북제재 압박의 예봉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협정 체결 공세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의 의도와 속셈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