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평검사 신분 전직 대통령 비자금 첫 밝힌 함승희 씨(포럼오래 회장)









민현배기자(yamin@skyedaily.com)



기사입력 2013-11-27 00:02:25































1995년 대한민국은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존재를 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폭로했고, 이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의 시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이었던 함승희 ‘포럼오래’ 회장은 은행 비리를 조사하다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함 전 검사는 전직 대통령 뿐 아니라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정황까지 포착해 냈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수사는 정치권의 외압으로 중단됐고 함 회장은 얼마 후 검찰생활을 마감했다. 함 회장은 검사시절 최단기간에 최다 범법자를 구속한 기록을 세웠다. 이는 2001년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공식기록이기도 하다. 함 회장은 스스로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 원칙이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라며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그다. 함 회장은 신분이 높을수록 그리고 공직자일수록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공직자의 비리에 누구보다 엄정하게 대처한 검사가 함 회장이다. 현직에 있을 때 그는 공무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그가 타지로 발령 나자 공무원들이 소주파티를 열 정도였다고 한다. 변호사이자 포럼오래의 회장으로 활동 중인 함 회장은 여전히 과거 검사시절의 신념과 소신이 묻어났다. 스카이데일리가 대쪽 같은 단죄의 원칙을 세워 공정하고 원칙이 선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했던 함승희 전 검사를 만나 지난 수사검사 시절의 못다한 이야기와 최근의 근황 등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비리 공직자들을 벌벌 떨게 했던 함승희 포럼오래 회장은 검찰 특수부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던 검사다. 그는 1983년 최단기간에 최다 범법자를 구속시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함 회장은 예전의 위엄과 달리 온화하고 인자한 인상이었다. ⓒ스카이데일리



함승희 포럼오래 회장은 2001년도 한국 기네스북에 올랐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함 회장은 해방 이후 국내 검사 중에 최단 기간 최다 범법자를 구속한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로 재직했던 1983년 한 해만 그가 구속시킨 범법자의 수는 무려 280명이었다.





1982년 특수부 검사로 검찰 생활을 시작해 1994년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그가 구속한 범법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가 구속한 사람 중 태반이 비리 공무원들이었다.





최단기간 최다 범법자 구속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검사





서울 삼성동의 모 호텔 커피숍에 만난 함 회장의 인상은 편안하고 인자했다. 최단 기간 최다 범법자 구속이라는 기록을 세운 검사의 얼굴이 맞는지 궁금해졌을 정도였다.





“검사를 그만두고 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야 수사를 하느라 험악했지요. 변호사, 국회의원을 하면서 범죄자 대신 보통 국민들을 만나니 저절로 얼굴이 변했습니다”





한때 그는 스타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1993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이었던 그는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었다.





그는 동화은행 부행장의 비리를 조사하면서 당시 민자당 의원이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집권당 인사 3명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발견하고 그들을 전격 구속시켰다.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함 회장은 한 때 스타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1993년 동화은행이 정치권에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포착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가 진행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은닉된 계좌의 존재를 파악했다. ⓒ스카이데일리

수사과정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계좌가 발견됐다. 수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당시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집권했던 김영삼 정부와도 연관이 있다는 건수가 나왔다.





함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측이 김 전 대통령 측으로 거액의 불법 대선 자금을 보낸 정황을 포착해낸 것이다. 자금전달은 당시 국회 재정위원장이었던 이원조 의원이 담당했었다고 함 회장은 당시를 술회했다.





사건이 커지면 막 임기를 시작한 현직 대통령(YS)에게 불똥이 튈 판이었다.





일개 검사가 현직 대통령과 맞설 뻔 했던 동화은행 사건은 제보나 고발로 촉발되지 않았다. 함 회장 스스로 파헤친 사건이었다고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검찰을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월한 정국 운영을 위해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검찰을 도덕성으로 압박한 것이지요. 법의 원칙대로 하자면 당시 정부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저는 원칙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 정도면 수뇌부에 알려야겠지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상관에게 은행 비리를 조사한다고 귀 뜸한 정도입니다”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함 회장은 원칙주의자다. 그가 추구하는 원칙은 함 회장 개인의 원칙이 아니라 사회와 법이 세운 공공의 원칙이다. 원칙을 지키는 그는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기와 배짱이 있는 검사로 활약을 펼쳤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판이다. ⓒ스카이데일리

함 회장이 진행한 수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권이 즉각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을 강력하게 압박해 수사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주요 수사대상이었던 이원조 씨는 일본으로 출국해 수사가 멈춘 상태였다.





국세청 직원 등으로 구성됐던 함승희 수사팀은 순식간에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허탈감에 빠진 그에게 해외출장 지시가 떨어졌고 그는 한달간 하와이에서 연수를 받았다.





돌아와보니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장으로 승진·발령됐다. 그는 지청장을 마지막으로 약 12년간의 검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함 회장이 파헤친 사건은 2년 후인 1995년 세상에 전모를 들어냈다. 박계동 전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 설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2011년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3000억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측은 당시 대선 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받아 민자당에 전달한 돈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북의 가족은 인민재판으로 죽고…남한에서 공안검사 돼





동화은행 사건을 듣는 동안 대통령과 맞서려고 했던 함 회장은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함씨들 성격이 원체 강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의 선대 중에는 일제시대에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있었다.





증조부의 동생인 함홍기 옹은 당시 서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선비였다. 함 옹은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3월4일 강원도 양양군의 5일장에서 주민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주모자로 붙들려 경찰서로 끌려갔고 무릎을 꿇으라는 강압을 듣지 않다 일경의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부친 함상순 옹은 해방이후 당시 북한 땅이었던 양양을 떠나 혈혈단신 월남을 단행했다. 남한에서 군장교로 복무하며 6·25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로 인해 북에 남았던 가족들은 인민재판을 받고 총살당하는 참담한 슬픔을 맞고 말았다.





함승희 회장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제대 후 농촌지도사로 공직생활을 이어나갔다.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함 회장의 가계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해방직후 혈혈단신 월남한 그의 부친은 국군 장교로 복무하며 6·25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이 사실이 북에 알려지자 그곳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인민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공안검사로 활약했다. 함 회장이 스카이데일리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어릴 적 함 회장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웃에 사는 공무원들이 직급이 낮은데도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다른 수입원이 없고서는 하급 공무원의 봉급으로는 그런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공무원 위치를 이용해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지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함 회장은 세상의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는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찰조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특수부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다.





1982년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를 시작으로 제주지방검찰청 특수부, 서울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산지청장을 거쳤다.





또 그는 공안검사로도 활약했다.





“부친의 월남으로 북에 남았던 친가의 남자들이 인민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남한에서 공안검사를 지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직자 비리에 누구보다 엄했던 검사에서 국회의원으로





검사시절 그는 범법자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범법자들의 죄를 끝내 밝혀내고 말았다.





그는 무엇보다 원칙을 중요시했다. 사회적으로 법의 원칙을 세웠다면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이 소신이자 검사로서 마땅한 책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에게 모범이 돼야 공직자들이 저지른 비리사건을 집중적으로 추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무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타 지역으로 발령 나면 그가 주재했던 지역의 공무원들은 소주파티를 열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검사에서 국회의원이 된 함 의원은 2000년 국회의원 선거 유세 당시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 지역 관공서에 들렀는데 공무원 절반 가량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자리를 비운 그들은 참고인 신분으로 함 회장에게 불려갔던 경험이 있는 공무원들이었다.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그후 함 회장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스카이데일리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00년 국회의원선거 당시 그가 서울 노원갑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지역구민들과 함께 지역 공무원도 만날 볼 생각으로 지역 관공서를 방문하게 됐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인원의 절반이 비어있었다. 다른 곳을 둘러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참고인 신분으로 함 검사에게 한 번씩 불려갔던 사람들이 그가 온다는 소식에 놀라 자리를 황급히 피했던 것이다.





웃지 못 할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주민들이 부정부패에 엄격한 그의 대쪽 같은 신념을 높게 쳐줬기 때문이다.





함 회장의 성품은 국회에서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청문회, 국정감사 등 여러 자리에서 검사시절 몸에 밴 예리한 관찰과 직언으로 청문회 출석한 인사들과 피수감기관장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검사와 피고인에서 동지로, 김종인 위원장과의 인연





그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파헤쳐왔다. 수사를 하다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피의자와 참고인 중 기억에 남는 인물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꼽았다.





그는 김 위원장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평했다. 검사와 피의자 신분으로 만났지만 김 위원장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김 위원장의 능력을 높이 산 함 회장은 새천년민주당의 국회의원 시절 김 위원장을 비례대표로 추천하기도 했다.





당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천한 결과 김 위원장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얼마 전 김 위원장은 함승희 회장이 만든 ‘포럼오래’의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피의자가 죄가 있으면 확실히 밝히고 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직자들의 죄에는 추상같이 엄했다.





“공직자의 죄가 있다면 반드시 수사하고 구속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잘못했으면 그 누구보다 엄하게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중간에 사면 같은 것으로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죄를 짓고 대한민국 정치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도 구속할 수 있는 검사가 될 것이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변호사이자 포럼오래의 회장을 맡고 있다. 포럼오래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민주엘리트 세력을 양성하는 모임이다. 기성세력의 부패나 종북세력의 선동을 모두 거부하고 교육받은 똑똑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함 회장은 포럼에서 무엇보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중요시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엘리트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단독-“검사는 대통령도 체포할 용기 있어야 하죠”


▲ 함 회장이 생각하는 검사의 상은 대통령도 구속시킬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는 신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적 원칙 앞에서는 동등하게 대우했다. 서울의 모 커피&49686;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함 회장. ⓒ스카이데일리

함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이후 포럼오래에 참석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박 대통령은 발제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정책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함 회장은 박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청렴한 대통령이 맞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고요.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대통령은 청렴해도 주위의 사람들까지 청렴하란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함 회장은 공직자 비리를 캐다보면 윗선으로 계속 올라간다고 했다. 과거 공직자들이 저지른 부정부패의 끝에는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 반드시 있었다.





만약 1993년으로 돌아간다면 수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반드시 계속했을 겁니다. 대통령의 불체포특권상 현직에서는 구속할 수 없지만 임기만료 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젊은 시절 꿈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대통령도 구속시킬 수 있는 검사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원칙을 지켜야 국민들도 원칙을 지키는 것 아닙니까.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그 집행은 검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검사라면 대통령도 구속시킬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www.skyedaily.com ⓒ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