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폴란드行 기업이 신경 써야 할 ESG
미·중 무역분쟁이 경제안보라는 이념 갈등으로 확대돼 세계 경제를 블록화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예상보다 훨씬 더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양상이 펼쳐지면서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글로벌 생산거점을 모색하게 됐다. 생산거점 지역 중 아세안만큼 우리 기업에 중요한 시장이 유럽연합(EU)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EU 국가 중 폴란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 기업들의 폴란드 직접투자 역사는 이미 수십 년이 됐으나 현재는 생산과 EU라는 소비시장을 겨냥하는 곳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폴란드는 기본적으로 EU 규범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최근 EU가 그린딜을 비롯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규제를 새로 도입하면서 폴란드 역시 기업에 대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EU가 2014년 마련한 ‘비재무정보 보고 지침’이 개정돼 올해 1월부터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이 발표됐다. 이는 업종이나 상장 유무와 관계없이 종업원 250명 이상인 대기업, 그리고 상장한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규제다. 2026년부터는 종업원 10명 이상인 상장사로 확대된다. 이외에도 기업윤리 지침을 협력업체, 공급업체 모두에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EU의 공급망 실사법 역시 강력한 규제다.

최근의 글로벌 규범 논의에서 EU는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태도가 분명하다. 사실상 EU가 글로벌 환경 규제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폴란드를 비롯해 체코 등 옛 공산권 경제였다가 EU에 소속된 국가들은 비교적 생산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나 관세 면에서 EU 역내 수출입에 입지가 편리하므로 제조 활동과 관련한 EU 탄소중립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EU는 ‘EU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를 만들었는데, 이는 기업의 탄소중립 달성 및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기업은 금융회사를 비롯한 투자자에게 자사의 현황을 녹색분류체계에 맞춰 보고함으로써 민간투자에서 ESG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비재무적 요소들도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해진다. KOTRA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폴란드의 수출 지역 중 독일이 29%를 차지하고 있고 영국을 제외한 역내 수출은 74%에 이른다. 따라서 인권에 관한 규정이 많은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을 비롯해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네덜란드 등 ‘EU 공급망 실사법’ 외 수출 대상 역내 회원국의 자국법 규정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2022년 발표된 ‘폴란드 ESG 기업분석’은 폴란드 내 832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보고서인데, 여기에 따르면 90%의 상장사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보고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용을 비롯한 사회 분야는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6%의 기업만 환경 정책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ESG 경영이 미흡하고 특히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탄소중립과 관련한 환경 규제와 고용 부문에 역점을 둔 사회적 규제가 강화될 것이고, 폴란드 내에서 기업들은 상당한 경영 환경 변화를 체감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몇몇 기업이 폴란드에서 지속가능 경영의 모범사례로 인정받았는데, 선제적으로 기업 내 대응 전략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