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술의 시대, 다시 '사회과학'이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아시아사회과학협의회(Association of Asian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의 25번째 국제학회가 지난 14~15일 서울에서 열렸다. 작년과 올해는 의장국인 한국이 주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과학학회들의 학회’인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사회과학협의회의 주제는 ‘아시아의 사회과학: 과거, 현재, 미래’였다. 사회과학이 위기라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취직하기 힘들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챗GPT가 등장했으며, 마치 반도체와 전기차산업의 글로벌 동향에 국익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지식의 숙성에 시간이 걸리는 사회과학은 현실에 맞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 전반적으로 관심이 없어졌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전에는 대학에 입학하면 사회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가 바라는 가치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지금 사회과학의 문제의식이 흐릿해진 것은 예전보다 경제가 발전했고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되고 개인적인 가치가 매우 중요해졌다. 사회나 국가라는 거시적인 실체보다는 개인의 행복, 여가와 노동의 균형 등 개인적 효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기업도 이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한다.

사회과학 내부의 문제도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사회과학, 특히 아시아의 사회과학은 글로벌 리더십을 장악하지 못했다. 사회과학은 여전히 서구 국가가 종주국임을 자랑한다. 실제로 사회과학 분야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지가 미국 등 서양 국가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의 사회과학이 더욱 약화한 것은 서양 학술지에 편향됐던 평가체제 때문일 수도 있다. 즉 우리나라 사회과학자는 서양에 유학 가서 서양에서 만들어진 사회과학 이론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뒤 박사과정에서 배운 이론에 따라 서양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구조가 굳건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서양의 사회과학을 극복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제25회 아시아사회과학협의회 학회에서 참석자들은 아시아 사회과학의 사상적 복잡성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의 다양성으로 인해 아시아의 사회과학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관해 토론했다. 그럼에도 아시아 각국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 사회과학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데 동의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시장에서도 사회과학적 가치가 법적 기준의 근거가 되고 권력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는 점을 보고했다. 이날 아시아 사회과학자들은 코로나19 이후 사회가 더욱 불평등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연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뉴노멀’ 시대에 불평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회과학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요한 기술혁신이 이 시각에도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그 기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에 기인한 사회과학적 가치다. 집단지성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특히 아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많은 해결책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