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20년 '금단의 땅'에 용산어린이정원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큰 공원이 우리나라에 처음 조성된 때는 1973년 5월 5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건설 지시로 서울 광진구 능동에 어린이대공원이 문을 열었다. 어린이를 위한 변변한 놀이시설은 물론 공원조차 없던 시절, 어린이대공원은 창경원(현 창경궁)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어린이와 부모들에게 사랑받았다. 크고 작은 재조성 사업을 거쳐 지금은 53만6000㎡ 부지에 놀이동산, 동물원, 식물원, 축구장 등을 갖춘 서울의 대표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원래 어린이대공원 부지에는 골프장이 있었다. 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의 땅’이었다. 일제는 1930년 영친왕이 기부한 조선 왕실 부지에 경성골프구락부를 완공했다. 이 골프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이승만 전 대통령 지시로 ‘서울컨트리구락부골프장’(서울CC)으로 재개장했다. 서울CC는 박 전 대통령이 자주 이용했다. 그러다 경호상 우려가 제기되자 고양 원당의 한양CC에 18홀을 신설해 이전했다. 어린이대공원은 바로 서울CC 자리에 건설된 것이다.

어제 서울 한복판에 ‘용산어린이정원’이 개장했다.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부지 일부에 조성됐다. 개장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어린이들과 함께 정원을 둘러봤다.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는 무려 120년간 ‘금단의 땅’이었다.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군이 주둔했고, 광복 이후 지금까지 미군기지로 활용돼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는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런 넓은 잔디밭 하나 제대로 없다”며 공원을 조성한 배경을 설명했다.

일반에 개방한 30만㎡의 정원은 미국 장군들이 거주했던 붉은색 지붕의 장군숙소 지역, 잔디마당·전망언덕, 스포츠 필드, 도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실 청사도 가까이 보인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렸을 올해 어린이날엔 안타깝게도 호우와 강풍이 예보됐다. 각종 행사도 줄줄이 취소·연기되거나 축소됐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날 가족 행사를 조금 늦춘다고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다음 주말쯤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아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