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베노믹스…日銀 통화정책, 어떻게 변할까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재임 기간 3673일, 1882년 일본은행 설립 이후 최장수 총재이던 구로다 하루히코가 퇴임하고 우에다 가즈오가 취임했다. 최대 관심사는 지난 10년 동안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아베노믹스, 즉 엔저를 통한 수출 진흥과 경기 부양 정책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베노믹스의 뿌리는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불어닥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팍스 재펜시아’까지 꿈꾸던 일본 정책당국은 크게 당황했다. 정책 대응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을 놓고 엇갈렸다. 전자는 ‘엔저와 수출 진흥’으로 상징되고, 후자는 ‘물가 안정’으로 대변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일본 경제는 내수부문 활력을 되살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탈피하기 어려운 고질병을 갖고 있다. 내수 부진이 인구 고령화, 높은 민간 저축률 등과 같은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재정 여건도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70%에 달할 정도로 악화해 민간 수요를 대체하는 데도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됐다.

내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디플레이션 탈출은 경제 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를 약세로 돌려놔야 가능하다. 자민당이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은 일본은행 총재이던 미에노 야스시가 고집스럽게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을 시행한 데 기인한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는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한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전격 영입했다. ‘경기 상황과 통화 가치가 따로 노는 악순환 국면을 차단하는 것이 일본 경기를 살리는 최후 방안’이라는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정책 수단별로 아베노믹스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2013년 취임한 구로다 총재는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바주카포식으로 공급하는 ‘충격요법’을 동원했다. 3년이 지나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마저도 효과가 미흡하자 수익률 곡선을 통제(YCC)해 10년 만기 금리가 제로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았다.

세계 중앙은행 통화정책 역사상 전례가 없는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으로 엔저를 유도하는 데는 성공했다. 구로다 취임 당시 85엔에서 움직이던 엔·달러 환율이 퇴임 때는 132엔 선까지 올라갔다. 중국 위안화, 한국 원화 등 일본의 주요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엔화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아베노믹스의 궁극적인 목표인 수출 진작이 얼마나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다. 특정국이 자국 통화 평가절하로 수출이 늘리기 위해서는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외화 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 통화 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것이 ‘1’을 넘어야 한다. 일본의 수출입 구조는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수출 진작 효과가 크지 않았다.

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엔저 정책이 의도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부작용에 심하게 노출됐다. 대외적으로 경쟁국 간 갈등을 조장했다. 엔저 유도를 통한 수출 진작은 그 피해를 경쟁국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장기간 엔저 정책으로 채산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한 내수업체였다. 저물가가 체질화된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 고통이 의외로 컸다. 수출업체마저 아베노믹스 추진 직전까지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 결제 비중을 40% 안팎으로 낮춰 놔 엔저가 돼도 채산성 개선 효과가 크지 않았다.

대내외적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하는 만큼 우에다 총재는 비전통적인 아베노믹스를 정상화해야 한다. 출구전략이 비상대책의 역순으로 추진되는 점을 감안하면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에 더 무게를 두면서 YCC 포기, 기준금리 인상, 대차대조표(B/S) 축소 순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미에노 패러다임으로 복귀하는 경우 일본 경제가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장기간의 엔저로 내수시장이 붕괴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강세가 되면 수출마저 부진해질 수 있어서다. 구로다와 달리 우에다 총재가 취임 초부터 충격요법을 쓰기보다 점진적으로 통화정책을 수정해 나가는 ‘계단식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