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의 희곡을 영화화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와 두 아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아서 밀러의 희곡을 영화화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와 두 아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아서 밀러의 명작 ‘세일즈맨의 죽음’이 초연된 1949년 2월 10일.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 모로스코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대공황(1929~39)의 상흔을 지니고 있었다. 작가 밀러도 그랬다. 어린 시절 부두 노동자로 일해야 했던 그는 당시의 밑바닥 체험을 윌리 로먼이라는 세일즈맨에게 그대로 투영했다.

나이 든 외판원의 비극을 다룬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2년간 742회나 무대에 올랐고 퓰리처상과 연극비평가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수십 차례 제작됐다. 흥행 요소는 “바로 내 얘기”라는 보편적 공감대였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라"

주인공 윌리는 대공황 이전까지만 해도 주당 특별수당을 170달러 이상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공황으로 경제가 망가지자 주택 할부금과 냉장고 월부금, 보험료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두 아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지만 자식들은 기대와 달리 엇나갔고 그는 해고까지 당했다.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많은 63세 세일즈맨….

궁지에 몰린 그는 가족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듯 자동차 폭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외부 환경 탓도 있겠지만 잘나가던 시절만 생각하고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내부 요인이 더 컸다. 호황기에는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남다르게, 효율적으로’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대공황 중에 태어난 ‘전설의 세일즈맨’ 빌 포터는 뇌성마비와 언어장애를 겪으면서도 남다른 전략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그에게는 멀쩡한 두 다리가 있었다. 하루 여덟 시간씩 15㎞를 돌며 100곳 이상의 집을 찾아다닌 덕분에 그는 그 지역 판매왕이 됐다. 교통사고로 엉덩이뼈가 부러졌을 땐 집에서 전화 판매를 시작해 더 많은 실적을 올렸다.

그보다 열두 살 많은 랠프 로버츠는 고교 졸업 선물 900달러로 부동산 영업을 시작해 연간 600채의 주택을 판매했다. 그가 정립한 ‘랠프의 법칙’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적극적으로 알려라’다. 그는 식당과 주차장,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나눠주며 자신의 일을 알렸다. 어느 날엔 야구 보러 갔다가 관중 1000명에게 명함을 나눠줬다. 그는 남들이 상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과 반대로 행동했다. 시간의 90%를 고객의 관심 사항에 할애하고, 상품 세부 설명에는 10%만 썼다. 그러면서 물건이 아니라 꿈을 파는 데 집중했다.

또 다른 세일즈 거장 엘머 휠러의 전략도 놀라웠다. 그는 “스테이크를 팔지 말고, 지글지글 익는 소리(sizzle)를 팔아라”고 강조했다. 상상력과 입맛을 동시에 자극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서는 성공의 사다리에 오를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기네스북에 오른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가 15년간 하루 6대씩 1만3001대를 판 비결도 이와 같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생전 사진을 250여 명의 조문객에게 나눠주는 것을 눈여겨보고 ‘250명 법칙’을 창안했다. 한 명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리면 250명을 저절로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세일즈맨’을 ‘샐러리맨’으로 바꿔도 똑같이 적용된다. 세계적인 투자전문가 보도 섀퍼는 책상 위에 오리 모형을 올려놓고 일한다. ‘오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에 따르면 직원들의 업무 자세는 ‘오리 유형’과 ‘독수리 유형’으로 대별된다. 오리형은 뭐든지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핑곗거리를 찾느라 꽥꽥거린다. 독수리형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해결책을 찾는 데 몰입한다.

시간이 지나면 둘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독수리형은 책임과 권한의 봉우리를 넘나들며 창공으로 날고, 오리형은 책임 회피와 남 탓에 자신의 권한까지 잃은 채 작은 연못에 갇힌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사다리에 오를 수 없다"

'오리형'인가 '독수리형'인가

창업에 성공한 사람도 대부분 독수리형에 속한다. 타성에 젖어 늘 하던 대로 하면 생산성이 점점 낮아지고, 남다른 아이디어로 혁신을 꾀하면 효율성이 더욱 높아진다. 여기에 젊고 참신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오랜 경륜과 지혜의 늘품까지 활용한다면 금상첨화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초연된 지 74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와 전략으로 불황과 맞서고 있는가. 안으로는 청년 취업난과 노년 빈곤의 두 덫에 걸려 있고, 밖으로는 전쟁과 인플레이션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모래주머니를 두 다리에 차고 뛰는 모양새다. 그나마 윌리처럼 63세까지 노동할 수 있는 민간 직장도 거의 없다. 자녀가 취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마저 일자리를 잃으면 가정 경제는 급속도로 무너진다. ‘연금 공백’과 ‘노후 궁핍’에 시달리다 다시 생활 전선에 내몰리는 70대 고령 인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 게 현실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아서 밀러는 89세까지 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2005년 2월 10일. 공교롭게 연극 초연 날짜와 같았다. 이날도 목요일이었다. 때론 어둡기도 하고 화창하기도 한 목요일의 명암을 인생의 날씨에 비유하면 어떤 색일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요일이지만, 오리형과 독수리형이 칠하는 색깔이 똑같을 순 없으리라.

더구나 인생 달력에서 목요일은 후반생의 막바지 요일이다. 젊고 화려한 월화수요일 지나 금요일 하루만 남겨놓은 시기. 이 또한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남은 생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