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 '추한 여공작'…파제트병인가, 여성 비방의 희생양인가
그림 1 퀜틴 맷시스, 추한 여공작 혹은 그로테스크한 여성, 1513,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64.2 × 45.5 cm

통상적으로 우리는 미술관에서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특히나 그 미술관이 전통적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신화 속 신, 요정, 영웅, 미녀나 멋진 군주 부부 등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눈이 즐거우리라 기대를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추한 여공작(Ugly Duchess)’을 마주치면 뜨악한 기분이 들다못해 실소가 터져나온다.

이 그림은 16세기 플랑드르 화가인 퀜틴 맷시스(Quentin Matsys)의 작품으로, 자수와 보석장식이 화려한 에스코피온(중세에 유행한 뿔형의 여성용 머리장식)과 가슴을 강조한 드레스로 한껏 치장한 여성을 플랑드르 고유의 치밀한 사실주의적 세밀화 기법으로 그려냈다. 이렇게 공을 들여 꾸민 여성이라면 응당 젊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는 이 여성이 이마, 눈썹, 광대의 뼈가 울룩불룩 튀어나온 큰 얼굴, 들창코에 긴 인중, 어깨에 엉겨붙은 듯한 짧은 목, 그리고 뭣보다 얼굴부터 목 그리고 가슴까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피부를 가진 노부인임을 인식하는 순간 깨지게 된다. 손에 든 작은 붉은 꽃봉오리가 구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관람자라면 더욱 이 노부인에 대한 비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학자들은 맷시스가 자신의 벗이자 동시대 최고의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1511년 출간한 <우신예찬>에서 “아직까지도 교태를 부리는 […] 거울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 역겹게 쭈글쭈글한 가슴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어리석은 늙은 여성을 희화화 하는 구절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1] 이들이 살던 르네상스 시기에는 여성의 노화나 매력적이지 않은 용모를 정상성(normativity) 혹은 사회적 질서의 폐기라 간주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동시대 아티스트이면서 맷시스와 예술적으로도 교류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이 든 연인들을 희화화하여 골상학적 문제를 가진 이들로 표현한 드로잉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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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이든 연인들에 대한 풍자, 1490
매력적이지 않은 외형을 도덕적 타락의 증거처럼 보는 르네상스적 태도는 현대적 기준에서 대단히 부적절하게 읽힌다. 하물며 그 외형이 병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추한 여공작’의 상반신을 보면 이마, 눈썹뼈, 턱관절, 쇄골 등의 뼈가 부풀고 비틀린 이상증후가 관찰된다.
런던대학 의학과 명예교수인 외과의 마이클 바움(Michael Baum)과 동료 크리스토퍼 쿡(Christopher Cook)은 커진 턱뼈로 인해 인중이 늘어나고 코가 위로 밀려 올라간 골상학적 문제가 파제트병(Paget’s Disease)의 후기 양상이라는 논문을 내놓아 이 소견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2]

파제트병은 뼈에 손상을 일으켜 뼈를 비대하게 하거나 기형으로 만드는 질환이다. 1877년 영국 의사인 제임스 파제트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으며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뼈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오래된 뼈는 새로운 뼈의 생성을 통해 교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파제트병은 새로 생성되는 뼈의 성장속도가 죽어가는 뼈에 비해 빠르고 크기도 커지며 형태도 기형적으로 변하면서 골밀도가 감소하여 부러지기 쉽다. 파제트병은 우리몸 어느 뼈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가장 흔히 일어나는 곳은 골반, 척추, 두개골, 하지 등이다. 다리 뼈는 활처럼 휘어지고 척추가 휘어지는 척추만곡증이 생길 수 있으며 두개골의 경우 ‘추한 여공작’처럼 불균질하게 커지면서 특히 상악 뼈가 커지며 인중이 늘어난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쭈글쭈글 '추한 여공작'…파제트병인가, 여성 비방의 희생양인가
그림 3 파제트병 환자의 두개골
그런데 그림 속 여성의 모델은 실제 파제트병을 앓은 사람이었을까? 혹은 그렇게 그려져야 할만큼 늙고 비도덕적인 허영덩어리 여인이었을까? 우선 이 질문에 답하려면 맷시스가 누구를 그렸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여러 연구서들은 ‘추한 여공작’이 그린 대상이 14세기 여성 군주인 티롤의 마가렛(1318~1369)인 것으로 파악한다. 마가렛은 현대 오스트리아 남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카린티아, 티롤과 슬로베니아에 해당하는 크라인의 공작이면서 보헤미아 왕국의 전 군주였던 헨리의 외동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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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현재의 오스트리아와 인근 지역의 13~14세기 지도. 주홍색 합스부르크, 보라색 룩셈부르크, 연두색이 비텔스바흐의 영토다. 티롤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이면서 주변국들의 정치지리적 요지다.
헨리는 아들이 생기지 않자 비텔스바흐의 루드빅 4세와의 합의 하에 크라인 공국을 합스부르크에 내어주는 조건으로 딸인 마가렛에게 카린티아와 티롤의 공작 자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약속 받는다. 당시 주변국인 합스부르크, 비텔스바흐, 룩셈부르크는 전쟁을 통해 치열한 권력 다툼 중이었기에 당시 보헤이마의 왕인 룩셈부르크의 요한은 헨리에게 자식들의 결혼을 통해 강력한 연합체를 형성하자고 제안한다. 요한은 아들 요한 하인리히(그의 형이 차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4세이다)를 티롤로 보내 마가렛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하는데 당시 요한 하인리히 나이가 고작 8세, 마가렛이 12세였다.

이 결혼 덕에 요한왕이 이탈리아로 연결되는 알프스 지역을 손에 넣게 되자 비텔스바흐 황제 루드빅4세는 이미 사망한 마가렛의 아버지 헨리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카린티아 공국을 합스부르크 공작인 알버트 2세에 넘긴다. 그의 아내는 헨리의 누이 즉 마가렛의 고모였기에 티롤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모 잃은 10대 소녀에 불과한 마가렛은 완전히 비텔스바흐 왕족들의 손에 티롤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듯 보였으나 그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룩셈부르크와의 연맹을 활용하기로 결심하고 남편의 형인 카를로 하여금 지방 귀족들을 설득하도록 하여 티롤의 공작으로서의 승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보호해내지만 이후 마가렛의 정치적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남편 요한 하인리히는 무능과 허세로 인해 티롤 귀족들로부터 공동 군주로 지지받지 못했고 그 반감이 너무 강해 1337년, 아버지와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겠다는 미명 하에 잠시 티롤을 떠나게 된다. 1341년 귀가하려는 그를 마가렛은 성 문을 열어주지 않으며 거부한다. 요한 하인리히가 속한 룩셈부르크 왕가의 반발을 막기 위해 마가렛은 다시금 라이벌국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비텔스바흐의 루드빅 4세의 큰 아들인 브란덴부르크의 루드빅 1세와 재혼하게 된다.

전 남편과 제대로 된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 재혼을 한 것은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스캔들이 되었으며 교황 클레멘트 6세에 의해 이 신혼부부는 종교적 파문을 당한다. 하지만 마가렛은 영리하게 지방 귀족들을 움직여 요한 하인리히와 부부생활을 한 적 없다는 근거를 들며 대중으로 하여금 첫 결혼을 무효라 믿게 유도한다. 또한 이로 인해 한때 카를 4세와 척을 져 티롤을 빼앗길 뻔 하지만, 결국 요한 하인리히가 다른 여성과 재혼하기 위해 교황의 윤허를 받을 수 있도록 카를4세는 티롤에 대한 적대감을 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차후 마가렛은 자신의 아들을 합스부르크의 알버트 2세의 딸과 결혼시키며 합스부르크로 하여금 교황을 설득하게 만들어 교황 이노첸트 6세가 그녀와 새 남편을 다시 카톨릭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듯 마가렛은 대단한 외교적 전략을 갖추어 당대 가장 강력한 정적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 위대한 군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역으로 그녀의 정치적 능력은 그녀의 라이벌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특히 이 여성 공작의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은 오스트리아 주변 여러 강성한 왕조들의 현재와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큰 사건이었던만큼 이와 관련된 비방이 판을 치게 된다. 이때 마가렛의 정적들이 그녀에게 붙인 멸칭은 ‘거대 주둥이 마가렛’(Margarete Maultasch) 였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사악한, 창녀 같은 마가렛’이란 뜻을 갖는다. 당대 기록에는 그녀의 입이 실제로 크다거나 외모가 흉측했다거나 병세를 가졌다는 언급이 전무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예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티롤에서 만든 마가렛의 인장 속 그녀의 모습은 매우 매력적인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16세기 전반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작가미상의 이 회화는 아름다운 여성이 권위를 드러내는 화려한 복식을 입고 양 손에 각각 티롤과 바이에른의 깃발을, 또 발치에는 카르티아의 깃발을 갖고 있는데 바닥에 적힌 이름을 통해 이것이 마가렛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재위 시기, 특히 재혼을 즈음하여 만들어진 별명으로 말미암아 대중은 그녀가 기형적으로 큰 입을 가진 여성으로 기억하게 되었으며, 그 단어가 갖는 성적 함의로 인해 성적 윤리의식이 희박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까지 굳혀졌던 것이다. 그녀가 살았던 중세, 그리고 이후 르네상스부터 근자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가진 여성은 모략과 비방을 마주해야 했고 특히 성적 비방은 그런 여성의 권위를 해체할 가장 흔한 공격 무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맷시스가 16세기에 14세기 복식을 한 흉측한 여공작을 그린 것은 바로 티롤의 마가렛에 대한 이러한 맥락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쭈글쭈글 '추한 여공작'…파제트병인가, 여성 비방의 희생양인가
그림 5,6. 1363년에 만들어진 티롤의 마가렛 인장; 작가미상, 티롤의 마가렛, 1500년대 초

퀜틴 맷시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두개골 변형 사례들은 19세기 루이스 캐럴의 유명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험>의 삽화로 재생산되어 현대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캐럴의 초본은 존 테니얼경의 삽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 동화 속 여공작 캐릭터가 삽화에 등장하면 화려한 에스코피온과 대조를 이루는 큰 머리, 뚱한 표정, 들창코와 거대해진 인중과 하관을 보며 우리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그가 그린 여공작 캐릭터을 보면 ‘추한 여공작’에서 영감을 받아 마가렛의 두개골 이상을 그대로 그려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희화화가 개인의 병증의 묘사임을, 또한 이를 통해 한 중세 여성 군주가 수백년에 걸쳐 명예를 실추당했음을 알게된 후로는 테니얼의 삽화와 맷시스의 ‘추한 여공작’을 보며 더이상 예전처럼 편히 깔깔 웃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해 그릇된 편견과 오해가 많았다. 문둥병,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씨 병’을 예로 들자면 외적으로 흉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하늘의 벌을 받은 것’이라 인식해 천형(天形)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선 과학을 기반으로 많은 질병에 대한 원인이 설명됨에 따라 질환을 가진 환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사회적인 낙인을 찍는 것은 지양해야 할 태도임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증이 명백한 이미지를 두고 과거의 인식을 습관적으로 적용해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마음을 품게 되진 않는지 늘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추한 여공작’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듯 하다.
쭈글쭈글 '추한 여공작'…파제트병인가, 여성 비방의 희생양인가
그림 7.8. 존 테니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험> 오리지널 삽화 속 여공작, 1865


[1]Christa Grössinger, Picturing women in late Medieval and Renaissance art.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7, p. 136

[2] Christopher Cook, A Grotesque Old WomanBMJ, 2009;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older-women-the-ugly-duchess-exhibit/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