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업들이 ‘글로벌 선거의 해’를 맞아 비상이 걸렸다. 각국 정치인들이 당선을 위해 유권자 입맛에 맞춰 자국 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해외 기업에 빗장을 거는 등 자국 우선주의 공약을 잇따라 내걸고 있어서다. 기업들도 현지에서 정책을 유리하게 조정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여 로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세계 포퓰리즘 광풍…기업들 '로비 없이' 생존 어렵다

인도·멕시코 등 ‘포퓰리즘’ 강화

28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인구 약 40억 명의 80개 국가가 올해 선거의 해를 맞이한 가운데 자국 우선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국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3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5월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를 위해 총 100억달러(약 13조7800억원)의 보조금을 약속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부터는 해외 컴퓨터·태블릿 수입 허가제를 실시했다. 이는 반도체·노트북 등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2월엔 국내 휴대폰 생산 및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부품 수입 관세를 기존 15%에서 10%로 인하하기도 했다.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멕시코에서는 ‘국영기업 우선’ 기조가 강화될 전망이다. 집권여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는 지난달 18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현 정부 유산을 지키기 위해 국영 에너지기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외국 기업에 줬던 채굴권을 지난해 회수하고, 리튬을 국유화했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선거 과정에서 전임자 조코 위도도의 희귀광물 원광 수출금지 정책을 확대·계승하겠다고 밝혔다. 니켈 생산 1위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원광 형태 니켈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두 후보 간 ‘보호무역’ 정책 경쟁이 치열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 고율 관세 부과를 공약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3배로 인상하는 카드로 대응했다.

미국 내 로비 3년 새 13% 증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보편화하면서 정치권과의 관계 설정이 기업 흥망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 자금 연구단체인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제조사 인텔은 로비 비용을 2020년 360만달러에서 지난해 686만달러(약 94억5000만원)로 늘렸다. 인텔은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 85억달러와 대출 지원 110억달러를 받는다.

지난해 미국 내 로비 규모는 3년 전보다 12.7% 증가한 42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는 1만15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늘었다. 맥킨지, 덴톤스글로벌어드바이저, 맥라티어소시에이츠 등 컨설팅업체는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기업인들로 문전성시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 거대 기업들은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는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인들이 직접 해외 정상과 접촉해 사업 물꼬를 트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인도 생산 비중을 늘리는 애플은 지난해 4월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인도를 방문해 모디 총리와 투자 전략을 공유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2월 오브라도르 대통령과의 통화로 막혀 있던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의 활로를 뚫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물 부족을 막기 위해 멕시코 북부에 신규 공장 건설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머스크 CEO는 공장에서 재활용 물을 사용하겠다며 설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