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최근 보증금 11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기존 세입자가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보증금 8억3000만원에 살던 집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집주인은 3억원을 한꺼번에 올렸다.
반포 전셋값 3억 '쑥'…"4년치 한꺼번에 올라"
오는 7월 말 시행 4년 차를 맞는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전세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송파구, 서초구, 마포구 등 서울 인기 지역의 집주인이 4년치 인상분을 전셋값에 반영하고 있지만 ‘전세 품귀 현상’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 당시 예견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4년치 인상분 한꺼번에”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는 전세 보증금 15억원에 세입자를 찾았다. 4년 전 전세금(12억원)보다 3억원이나 오른 값이다. 기존 세입자는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5%(6000만원) 오른 12억6000만원에 재계약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를 구했다.

이런 움직임은 선호도가 높은 서울 지역 역세권·대단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잠실동 트리지움 전용 84㎡는 4년 전 보증금 9억3000만원보다 2억원(21%) 높은 11억3000만원에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맺었다. 통상 임대차 계약은 만료 2~4개월 전 계약 해지·연장을 협의하는 만큼 인상률을 논의하는 집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세시장 불안은 2020년 7월 임대차법 시행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다. 법 시행 직후 전세시장은 가격 이중 구조(신규 전셋값과 갱신 가격)와 물량 급감 등으로 혼란을 거듭했다. 전셋값이 2022년 7월 역대 최고가로 정점을 찍은 이후엔 금리 인상과 대출 이자 부담으로 한동안 가파르게 하락해 역전세난이 벌어졌다. 가격 안정성이 중요한 전세시장이 냉탕과 온탕을 오간 것이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작년 5월부터다. 서울 입주 물량 감소와 매매시장 관망세, 가계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아파트 전세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빌라와 오피스텔 전세 사기로 아파트 전세에 수요가 몰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52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중·은평구(0.15%), 노원구(0.13%), 성북구(0.12%) 등의 상승 곡선이 가파른 편이다. 동작구(0.12%)는 흑석·사당동 대단지 위주로, 서초구(0.08%)는 반포·잠원동 아파트의 전세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세시장 불안 이어져

전세시장 불안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주 0.8% 상승한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작년 6월 말부터 47주 연속 고공행진하고 있다. 세종(-0.15%), 경남(-0.08%), 대구(-0.07%) 등 공급 물량이 많은 일부 지방을 빼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평균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초부터 임대차 물량 부족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의 전세 물량은 2만9187가구로, 1년 전(3만8804가구)보다 24% 줄었다. 전세 물량이 5만5000여 가구에 이르렀던 1년6개월 전(5만5882가구)보다 60% 감소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입주 물량 부족에 임대차법 4년 차라는 뇌관까지 겹치면서 전세시장 불안이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입자도 셈법이 복잡하다. 한꺼번에 수억원을 마련하는 게 어렵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어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서울은 입주 물량 자체가 귀하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