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범고래가 된 'K지식재산'
1970년대 말 글로벌 산업 지형은 기술3극 체제로 불렸다. 미국 유럽 일본의 산업기술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돌아갔다는 말이다. 당시 유엔 기구인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연수생으로 참여한 필자에게 선생님은 주로 기술3극 국가에서 온 전문가들이었고, 학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출신들이었다. 우리는 전문적인 특허행정기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방경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첨단 기술의 주변부에 존재하던 미약한 국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7년부터 우리는 특허 5대 강국으로 당당하게 올라선다. IP5로 불리는 신체제의 일원이 된 것이다. 기술3극 체제에서 지식재산(IP)의 세계 질서가 주로 논의되다가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5극 체제로 세상이 변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사이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국가적인 회의를 주최하면서 국민이 상당한 긍지를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특허를 통해 IP 5대 강국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사실 꿈만 같은 일이다.

매년 9월 WIPO 총회가 열리면 각국 특허청장들이 우리 특허청장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 1960년대 당시 건축 기술이 부족해서 필리핀의 도움으로 간신히 장충체육관을 건설한 것을 생각하면 한국 특허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면담시간을 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1987년 설립된 국제특허연수원은 특허청 심사관을 고도로 훈련시키기 위한 기관이었다. 당시 예비비로 연수기관을 설치하는 큰 정책적 결단을 하면서 WIPO와 함께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을 위한 대표적 연수기관으로 키워보자고 했는데, 6년 전 우리 연수원에서 교육받은 연수생이 미얀마 특허청장이 됐다. 최근에는 한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로 격상된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에서도 우리의 연수 프로그램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한국 심사관을 파견받아서 자국 특허심사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고급 특허 인력 수출을 통해 외화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IP 역량은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K컬처 K방산과 함께 글로벌 중추 국가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외교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