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세계 10위 경제대국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치욕적인 사건이다. 이달 초 인도네시아의 한 지방 축구장에서 관중 난입으로 174명이 압사한 것이나,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승강장에서 설 귀성객 36명이 압사한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지금 서울 번화가에서도 재연됐다.

이번 사고는 안전사고의 전형적 패턴인 ‘스위스 치즈 모델’처럼 여러 안전장치 결함이 동시에 겹치면서 일어났다. 비극의 장소인 해밀톤호텔 옆길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하는 거리는 폭 4m로 좁은 데다 내리막길이기도 하다. 이곳에 수많은 인파가 뒤엉켜 있다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크나큰 인명피해를 낳았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한 단체와 기관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이나 구청에 집회, 행사 신고가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혼란이 증폭됐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다. 하인리히 법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규모 인파에 따른 위험은 진작부터 예견된 것이다. 코로나 보상심리까지 겹쳐 사고 전날부터 10만여 명이 몰려 “깔릴 뻔했다”는 경고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사고 당일 서울 시내에서 보수·진보 진영 간 맞불 집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200여 명의 인력만 투입해 마약 단속에 치중한 경찰의 안일한 자세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서울시와 용산구 역시 현장 통제에 훨씬 적극적으로 임했어야 했다.

정부는 11월 5일 24시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한 사고수습본부를 가동했다. 사고 후 책임 소재를 놓고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차분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에 힘을 쏟을 때다. 안전사고에 대한 통렬한 사회적 반성과 함께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을 실질적 대안 도출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보면서 사회의 하드웨어는 선진국이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시민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선진 사회는 정부와 공권력의 힘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소중한 젊은이들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보낸 데 대해 사회 전체의 처절한 반성과 함께 시민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영국에선 1666년 대화재를 상기시키기 위해 동요를 만들어 어릴 때부터 부르게 하고 있다. 도로 운전 시 구급차와 소방차 출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 태도가 쌓여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과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태원 사고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엄중히 경고한다.

벌써 일부 야권 인사들은 SNS를 활용해 이번 사고를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고만 터지면 조작과 선동을 통해 국정 문란, 정부 무능으로 몰아가 정치적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