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모험 정신 사라지는 K바이오
지난달 말 우리 바이오 산업에 큰 획을 그은 일이 있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이 당국의 품목허가를 받은 것이다. ‘코로나 백신 주권’을 확보한 5개국에 한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스카이코비원은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다. 때를 놓친 탓이다. 백신은 남아돌고, 팬데믹도 저물고 있다. 코로나가 계절성 독감처럼 사라지지 않고 소규모 유행을 반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대목’은 지나버렸다. 게다가 화이자와 모더나가 이미 시장을 장악했다.

스카이코비원 개발에는 자그마치 2500억원이 넘게 들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등 국제 민간기구가 개발비 대부분을 부담했다. 만약 이들이 돈을 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스카이코비원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끝까지 개발을 강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 주권 이뤘지만

스카이코비원 평가를 시장성만으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 분명한 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위상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벌써 ‘백신 신흥 명가’ 대접을 받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을 맡아 이름을 알렸고 이번엔 완제품 독자 개발까지 이뤄냈기 때문이다.

바이오는 시간과 자본의 축적이 승부를 가르는 대표적 산업이다. 코로나로부터 인류를 구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팬데믹이 터진 뒤 부랴부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화이자의 공동개발 파트너인 바이오엔테크, 모더나가 10년 넘게 연구한 끝에 나온 축적의 산물이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2014년부터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과 장티푸스 백신 등을 공동개발하며 실력을 쌓은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바이오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본력을 가진 이들의 진출은 반가운 일이다. 아쉬운 대목은 위탁생산 사업에 치중하려 한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단기간에 세계적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업으로 발돋움한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것 같다. 게다가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들마저 경쟁적으로 위탁생산 사업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만 놓고 보면 위탁생산이 바이오산업의 유망 분야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글로벌 기업들은 거꾸로 손을 떼고 있는데도 말이다.

위탁생산에 밀려나는 신약 개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성공 확률이 10%도 안 되는 신약 개발의 위험을 감수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반도체 석유화학 등에서 쌓은 제조 역량이 있으니 위탁생산은 안전한 사업으로 여긴다. 바이오벤처엔 매출을 올려 코스닥시장 퇴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고육책이다.

우려되는 것은 신약 개발에 쏟아야 할 화력이 분산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게 우리 바이오 기업의 현실이다. 최근 만난 바이오 기업 A사 대표의 말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해외 임상 경험이 없다 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결국 실패의 쓴맛을 봤죠. 하지만 배운 게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 깨쳤거든요.”

신약 개발의 역사가 짧은 우리에겐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A사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배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꺼리는 배경이다. 이래선 신약 강국이 되기 어렵다. 국가 연구개발 과제든, 코스닥 상장 기준이든 성공 방정식에만 맞춰진 기존 시스템으론 어림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