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부실 관리 책임이 큰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사퇴 요구를 일축한 것은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노 위원장은 어제 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김세환 사무총장의 면직 의결만 처리했다. 그는 “앞으로 선거 관리를 더 잘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사무총장 사퇴 선에서 선거 부실관리 책임을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선거 실무를 총괄한 사무총장의 사퇴는 당연하지만 그걸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역대 최악의 부실관리라는 오점을 남긴 점에서 노 위원장부터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후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소쿠리·비닐 투표함이 등장했고, 기표된 투표용지가 다시 배포되는 등 대혼란을 빚었다. 현장이 아수라장이 됐는데도 노 위원장은 출근조차 안 했다. 공직자로서 소명의식이라곤 조금도 안 보인다. 급기야 지역·중앙선관위 상임위원 15명이 그의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실상의 사퇴 요구로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노 위원장이 버티고 있으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이 지경으로 추락한 데는 이 정권의 책임이 크다. 대법관을 겸하는 노 위원장은 자격과 자질 시비를 불렀다. 그래도 대통령은 친(親)정권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그의 임명을 밀어붙였다. 노 위원장은 자신이 맡은 대법원 재판에서 법조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하급심에서 뒤집히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그의 취임 뒤 선관위는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 때 ‘위선, 무능, 내로남불’이 적힌 현수막은 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1 합시다’ 캠페인 등은 허용해 편파 논란을 불렀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 캠프 출신 인사의 상임위원 임명을 강행했고, 대선을 앞두고 그의 연임을 추진했다가 내부 집단저항까지 초래했다. 현재 선관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친여 인사이니 엄정한 심판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설립 62년 된 선관위는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무능·무책임·편향을 바로 세울 어떤 대책도 안 보인다. 이대로라면 ‘6·1 지방선거’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참에 노 위원장이 물러나는 것은 물론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 노력을 보이는 게 헌법기관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